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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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헨리 포드의 자동차 생산라인이 헉슬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그리스도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 신이 다름아닌 포드라니 말이다. 포드 신을 숭배하는 가상의 세계. <멋진 신세계>에서 포드의 후계자들은 자동화된 생산라인을 이용하여 자동차 대신 인간을 대량으로 찍어냈다.


<멋진 신세계>의 통치자는 인간들을 다섯 계급(알파, 베타, 감마, 델타, 입실론)으로 나누어 찍어냈고, 등급에 따라 다른 색깔의 옷을 입히고, 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했다. 상위 계급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할 목적으로. 하위계급은 단순노동에 필요한 노예계급으로 나누었다. 


통제자의 공장에서는 지금까지 쌓아온 과학 지식을 토대로 각 계급의 지능지수를 차등화시켰다. 신체와 의식이 완벽하게 형성되지 않은 태아에게 같은 목소리로 같은 메시지를 주입하여. 자신이 행복한 세상을 살고 있다고 세뇌를 시켰고, 늙지 않는 얼굴과 신체를 제공하였고, 대가없는 쾌락을 제공했고, 심리적인 고통에 대응할 수 있는 소마라는 이름의 알약도 제공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통제자 한 사람을 위해서 돌아가는 세계. 그 누구도 당신의 세상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세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기는 커녕. 오히려 행복하다고 느끼는 세계. 통제자의 시점에서 <멋진 신세계>는 그야말로 완벽한 유토피아였다. 


2. 


신세계에 살았던 인간들 가운데. 특히, 알파 계급의 똑똑한 몇몇 사람들은 약간의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의문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사상을 만들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무언가를 표현해할 순간이면 무의식의 벽에 부딪혀서 불편해지고, 순식간에 생각이 사라지는 경험을 반복했고, 그런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서 갑갑했다


포드신을 모셨던 시간동안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은 상당수 있었던 듯 싶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버나드 마르크스와 왓슨 헬름홀츠라는 인물이 그런 역할을 담당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 통제를 벗어나려고 했다. 포드신을 모시는 통제자 무스타파 몬드가 봤을 때, 버나드와 헬름홀츠는 돌연변이나 다를 바 없었다.


헬름홀츠는 내면을 탐구하는 학자 스타일이라서 다루기 쉬운데 반해서. 버나드의 경우는 잠재적인 독재자 스타일인데. 그는 같은 계층의 사람들에 비해서 부족한 외모에 대한 자격지심을 극복하기 위해서, 특별한 존재가 되길 바랬던 인물이었다.

자신에게 향하는 불합리한 손가락질에 절망하던 버나드는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그의 상관이 저지른 부정행위의 증거를 우연히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신분상승의 재료로 이용하기 위해서, 그 증거를 상부에 보고했다. 더욱이 증거를 연구대상으로 만들고, 그와 대화가 가능한 유일한 인간으로써 자신의 특별함을 포장하려 했다. 


3. 


그 증거가 바로 야만인으로 불리는 '존'이었다. 야만인은 <멋진 신세계>에 분열을 가져올 인물이었다. 야만인 존은 포드시대가 태어나기 전의 세상이 가장 빛나던 시기의 유산인 셰익스피어의 가치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설에서는 야만인과 통제자 간의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이 논쟁에서 왜 안정을 원하는지? 혹은 왜 계급사회로 만들었는지에 관련한 그들의 생각 전부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주고받는 긴 대화의 모든 것이 <멋진 신세계>의 핵심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야만인의 말은 거의 대부분이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의 문장 가운데 한 부분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야만인 존은 그야말로 셰익스피어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라고도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가치란 간략히 말해서 르네상스 시대의 가치를 말하는 것인데. 높은 수준의 도덕성. 순결의 소중함. 일인일처제. 극기정신과 같은 인본중심적인 사고방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357. 가치란 어느 특정한 의지에 따라 좌우되지는 않아요. 그것은 쟁취하려는 자에게 그 자체로서 소중할 뿐 아니라, 그의 판단과 권위에 따라서도 그 가치가 좌우됩니다.


4. 


멋진 신세계의 벽은 공고했다. 몇 백년동안 도전을 받았지만 무너지지 않았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통제자의 생산라인에서 생산된 불량품은 불량품이 모여있는 전 세계의 섬으로 보내졌고, <월든>의 소로우처럼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주의의 길을 선택한 존에게는 야만인으로 불렀던 지난 세월과 마찬가지로 미개한 구경거리로 전락시켰다. 


존의 일상을 추하고 포악하다는 이미지(존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유혹을 견뎌내려는 인내의 몸부림이지만, 신세계인에게 있어서는 알약 하나만 먹어도 해결되는 간단한 일이기에 더욱 존을 이해할 수 없었다.)에 포장함으로써 야만인은 미개한 종족이라는 것을 증명했고, 통제자의 아래에 있는 것에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했고, 이런 방식으로 통제자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시켰다. 


몇 년전.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던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처럼 야만인 존 역시. 신세계인이자 좀비인 다수인으로부터 전설 속의 미개인으로 남겨질 운명에 처했다. 이들이 부르짖었었던 인본주의의 가치는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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