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내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난이도 : ★

 

1. 독특

 

지금까지 읽어왔던 소설들. 특히, 욕망과 성을 다룬 소설들은 인간의 성적 욕구를 애초부터 사실(진리)로 못박아둔다. 그런 후에 욕망을 어떻게 해소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한 해소 과정에서 권력의 상하관계가 형성(테스나 롤리타에서는 남성이 여성을...)되고, 이를 통해서 욕망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케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에 집착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마리 다리외세크 누님의 <가시내>는 성과 욕망을 다루되. 어른의 시선이 아니라 소녀의 시선으로 접근한다. 솔랑주라는 소녀의 시선에는 호기심이 있었다. 그 이유는 소녀에게 2차 성징이 찾아오면서 신체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러한 갑작스런 변화에 호기심을 느끼는 모습을 담아낸다. 모든 것이 그것에서부터 출발함을 알린다. 호기심. 불온한 의도나 욕구를 충족하려는 의도는 한참 후의 얘기다. 첫 출발점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108. 삶의 이런 어리석음, 이 육체의 어리석은 필요, 이 모든 것의 체증. 그녀는 물이 담긴 오목한 손바닥에 얼굴을 담근다. 차가운 바위와 쇠가 느껴진다. 물이 그녀의 젖가슴 사이를 흐른다. 그 우스꽝스러운 형태. 무거워진 치마가 그녀의 넓적다리에 달라붙고, 그녀의 사타구니가 뒤집힌 와이자를 그린다. - 텅 빈 동시에 가득 찬, 탐욕스럽게 부풀어 오른 이 고집스러운 존재 - 이것에 이토록 골몰하는 사람이 그녀뿐일까?

 

2. 님펫

 

여기서 나보코프 형님이 만들어낸 님펫이라는 존재와 <가시내>의 솔랑주라는 인물의 존재가 만난다. 순수한 호기심. 그것이 이성에게 얼마나 큰 유혹인지. 그런게 누구를 유혹할 수 있는 무기인지조차. 아니. 유혹이라는 것 자체를 전혀 모른 채 한꺼번에 매력을 어내는 어린 여성에게 다 이미 알 만큼 알아버린 남자들은 욕정을 느끼는 것이다.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마리 누님은 모든 소녀의 의식이 완전히 열리지 않았음을 암시하고자 서술 방식을 특이하게 (흐름이 이어졌다가 끊어지듯이 불규칙하게. 단절하여)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먼 곳의 어떤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의 느낌이나 생각이나 대화들. 바로 그 순간의 무엇만 <가시내>에서는 서술하는 것에 충실한 것이다

 

3. 또래 세계

 

주인공의 신체 변화에 따른 호기심과 두려움. 그리고 그 과정을 공유하는 또래 집단의 모임(학교 생활)은 흥미로운 상황이 발생한다. 자신과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친구들과 떨어진다는 것 자체가 고역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체적인 변화와 경험의 공유를 방해하는 요소가 등장한다. 다름 아닌 외부 요소로 인한 차별인데. 그것에는 부모의 경제적인 요소에 따른 편 나누기 정도가 될 것 같다. 가장 친한 친구가 로즈 였는데 둘 사이가 서서히 멀어지는 이유도 이것이고, 뤼르비드의 허물을 폭로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그랬다. 거기에 덧 붙여서 남자 문제까지 버무려진다. 그렇게 우정은... 사랑에 굴복한다. 

 

246. 사랑과 우정의 차이는, 사랑은 완벽한 합의인 반면, 우정은 사랑보다 강하지만 파괴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거야. 

 

4. 그녀의 남자. 과거와 미래

 

솔랑주는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한다.  어릴 때부터 그녀의 육아를 담당했던 비오츠와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아르노. 나는 그 둘 사이의 갈등을 보면서 솔랑주가 어떤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과거는 안정이요. 미래는 모험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비오츠는 솔랑주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로서 익숙함을 의미하고, 아르노는 솔랑주에게 여태껏 알지 못한 세계를 보여주는 매개체라는 점에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아르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어린 소녀를 깨우치게 하는 데. 그것이 책에 적힌 것을 앵무새처럼 받아들여 되풀이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지만. 세상에 대해서 완전히 눈뜨지 못한 솔랑주에게 그 이야기들은 신선했다. 

 

아르노의 말 


"네 나이 땐 당연한 거야. 난 네 나이 때 스스로를 과대평가했어. 지금보다 사는 게 더 힘들었지. 우린 다른 사람들과의 관게를 통해서만 자신을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야. 우리는 의식을 지니고 태어나지 않아. 그래서 정해진 성격도 없고 결정된 것도 없었지. 이 말을 한 사람은 사르트르야. 네가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그건 훌륭한 거야. 완전 훌륭하지..."

 

"너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게를 통해서만 너 자신을 규정할 수 있어. 확실히 그래, 이것도 사르트르가 한 말이야.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사람이지."

 

"잘 들어 봐. 넌 너 자신이 되어야 해. 그게 가장 좋아. 다른 사람들과 대면해서, 너 자신이 되라고. 사실 다른 사람들과 대면해서도 그게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야.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늘 선택할 수 있지. 항상 선택을 하고, 전적으로 자유로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선택에 의한 거야."

 

"사실 그 반대인지도 몰라. 말하자면 우린 자신만의 영화를 찍기 위해 대중을 필요로 하지. 그런데 대중은 영화를 필요로 하지 않아. 대중이 필요로 하는 건 <사실>이지. 네가 절망에 완전히 짓눌려 있지만 않다면 말이야. 헤겔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어. 우리의 의식 속에는 시간(연표)와 공간(너도 알지, 공간), 두 개의 매개 변수와 열두 개의 사각형, 우리가 개념들을 들여 보내는 열두 개의 범주가 있다고, 우리는 그렇게 앎에 다가갈 수 있다고."

 

이 말들이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은 소녀 솔랑주를 꾀기 위한 감언이설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의도가 느껴졌다. 

 

소설 속 삼각 관계에서 솔랑주의 선택이 이들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설정되지만. 각각의 관계. 솔랑주와 아르노. 그리고 솔랑주와 비오츠의 관계 속으로 파고 들게 되면 성적으로 자신의 만족보다 남성의 만족을 위해서 학대되는 여성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성행위에서 주도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수동적인 장면의 묘사로서... 이것을 로즈 어머니의 자조섞인 한 마디를 통해 읽을 수 있었다. 

 

216. 네 어머니는 안목이 뛰어나지만 그걸 발휘하지 못해. 여자들의 비극이지. 너희 세대도 우리의 투쟁을 계속하고, 우리의 유산을 이어받아야 할 거야. 

 

5. 천재성

 

이 책을 권하는 데는 이 누님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문장을 옮겨보는 것 보다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다.

 

129. 그녀는 자신이 계단을 올라가는데 계단이 자기 주변을 둘둘 감싸는 환상을 본다. 그 환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난간위에 손을 올린 채 회전하고 난간 위의 손을 바라본다. 뭔가가 그녀와 벽 사이에서 진동한다. 마치 그녀가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것처럼. 그녀는 여기에 있다. 이제부터 그녀는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어디엔가 존재할 수도 없는 채로 계속 여기에 머물 것이다. 생존의 수단 같은 이 육체 안에. 그녀는 플레이모빌을 그러모은다. 그것을 손의 오목한 부분에 올려놓는다. 찰칵,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몸짓이, 손짓이 무한히 계속된다. 마치 그녀가 자신의 모습이 찍힌 영화를 보는 것처럼.

 

130. 그녀는 자기 방에 틀어박힌 채 파괴되고 있다. 그녀를 보는 눈도 없고, 그녀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 증인도 없다. 그녀를 구성하는 원자들이 그녀를 떠난다. 먼지들이 유리창에 떠다닌다. 아주 작은 구름 하나, 빛줄기에 관통된 베일 하나. 

 

305. 이상해요. 난 퐁당 오 쇼콜라를 먹었고, 그건 이미 내 배속에 있어요. 그런데 혀에 여전히 그 맛이 느껴져요. 우리는 곧 식탁에서 일어날 거고, 내가 지금 아저씨에게 하고 있는 말은 가느다란 경계 같은 거예요. 과거와 마래 사이의 아주 가느다란 경계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거예요. 이해가 돼요? 바로 그거라고요! 우리가 경험하는 건 이미 과거에 속하고, 곧 미래가 와요. 글자 그대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알겠어요? 그 경험은 이미 끝났어요. 내가 먹은 크렘 앙글레즈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고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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