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베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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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

1. 짧아서 읽기는 쉽다. 그런데 문제는 읽은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있다.

2. 이 소설 역시. <절망>처럼 한번 읽고 자동으로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을 때는 나미에 대한 주인공의 성적 욕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욕망이 수면에 돌멩이를 던졌을 때 퍼지는 물결처럼 잔잔히 퍼지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비인정(의리나 인정따위 얽매이지 않는 일)을 추구하려 하지만,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남자라 성적 욕망을 감추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다 보니. 소설의 주 무대인 나코이로 떠나려는 그의 생각까지도 나미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주인공의 욕망이라고 오독했다.

소설 속에 담긴 주인공의 의식이 그가 미처 인지하지도 못했던 여인에 대한 욕망 또는 기대감을 은밀히 노출하는 것으로 봄으로써, 나미가 주인공의 농담대로 머리를 올린 모습을 욕탕에서 장난스레 보여주는 장면은 에로티시즘이 짙은 장면으로 읽혔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부분은 당연히 그럴 소지가 있음.) 그래서 주인공이 내면을 서사하는 소설의 모든 순간에 나미의 잔상이 그를 지배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그래서 주인공의 예술적 관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3. 하지만 두 번째 읽었을 때,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 서양화를 업으로 삼고 있는 주인공은 비인정의 경지를 이루기 위해 나코이 행을 선택하는 것이 확실했다. 그의 정확한 목적은 서양의 퇴폐적인 미술관에 동양의 장점을 덧씌우려는 것이었다. 주인공의 생각에는 동양이 이루어놓은 관점이 오히려 서양의 것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풀베개>는 그것에 대한 예를 많이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코이에서 만나게 될 나미와 그의 가족들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일종의 트릭스터(분리된 두 세계를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의 개념. 그가 몰랐던 세상을 열어주는 매개체. 좀 더 나가서 생각하면 주인공이 비인정을 통해서 그려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54. 이 여자의 표정을 보고 나는 어느 쪽인지 판단할 수 없어 망설였다. 입은 한일자처럼 다물어 고요하다. 눈은 조금의 틈이라도 찾아내려고 움직이고 있다. 얼굴은 아랫볼이 볼록한 미인형으로 차분함을 보여주는 데 반해 이마는 답답하고 좀스러워 이른바 후지 산 모양 이마의 속된 분위기를 띠고 있다. 그뿐 아니라 눈썹은 양쪽에서 좁혀져 중간에 몇 방울의 박하 기름을 떨어뜨린 것처럼 실룩실룩 안달하고 있다. 코만은 경박하게 날카롭지도 않고 둔하게 둥글지도 않다. 그림으로 그리면 아름다울 것이다. 이렇게 각각의 생김새가 모두 특이한 모양인데 그것들이 뒤섞여 우르르 내 두 눈으로 날아들었으니 어리둥절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4. 결론부터 말하자면 풀베개에서는 예술에 대한 작가의 비인정과 세상의 인정이 충돌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여인의 얼굴을 바로 앞에서 보면서도 그 얼굴이 도무지 어떤 얼굴인지 감을 잡지 못한다. 이 상태는 처음 대면한 순간으로 여인에 대한 어떤 선입견도 가지지 않은 비인정의 단계라고 볼 수 있는 듯하다. 비인정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예술관이라면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오묘한 이치를 잡아내야 하지 않았을까?

비인정의 상징. 그리고 그것에 대한 아이러니함은 이발사와의 대화와 이발사가 주인공의 머리를 잡고 휘두르고, 마구잡이로 면도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이 부분을 통해 비인정이 뭔가 어긋난 것임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5. 비인정을 추구하는 주인공은 소설 내내 하이쿠 몇 자를 끼적일지언정. 원래 가지고 있었던 목적을 이루지는 못한다. 즉, 화폭에 서양화를 능하가는 그림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림은 그리지 않아도 대신 머릿속에 작품을 많이 담았다며 스스로 위안하고, 비인정에 대한 생각을 지속해서 다지는 선에서 만족한다.

그러던 그는 마지막까지 잡히지 않았던 나미의 얼굴에서 부족한 부분이 연민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지금껏 비인정만을 이야기했던 주인공의 이론에 정확하게 배치되는 '연민'이라는 단어다. 주인공은 그녀의 얼굴. 더 나아가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작품에 '연민' 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지만. 비인정의 단계에서는 그녀에게서 그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주인공은 나미의 얼굴에서 '연민'을 발견한다. 그와 동시에 그는 나미와 그녀의 남편. 그들 가족의 인생에 깊숙하게 개입하게 되어버렸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비인정의 경지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사실을. 사촌 동생이 전쟁터로 떠나게 되는. 그리고 부부가 생이별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인정의 경지에 이르게 되자 자연스럽게 화룡점정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주인공이 처음에 생각했던 비인정이 틀렸음을. 진정한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인정을 항상 품고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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