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1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최종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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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

1.

동시대에 등장했던 소설인 <달과 6펜스>나 <젊은 예술가의 초상> 같은 작품에는 자아의 극대화를 추구하던 인물상이 등장한다. 스트릭랜드나 스티븐 디덜러스같은 이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 규범이나 종교로부터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예술가로서 자신만이 창조할 수 있는 절대적인 무엇을 추구하는 자유를 선망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를 대중의 잣대로 진단한다면 그것은 대부분 기행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요즘 시대에도 이러한 시선은 별반 다르지 않다. <거위의 꿈>의 노래에도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그들의 행위가 헛짓인지 아니면 정말 창조적인 무엇인지. 그들의 꿈과 재능이 칭찬받아 마땅한 것인지는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나보코프의 소설 <절망>은 그것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한다.

2.

나보코프의 절망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내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의미는 답답함에서 찾아오는 절망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꼭 빼닮은 펠릭스를 발견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은 그가 발견한 자신과 펠릭스의 닮음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있다.

남들의 눈에는 그 두 사람이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에 게르만의 존재 자체. 그의 예술작품 (치밀하게 설계한, 필연적으로 다가온 살인계획) 자체가 부정당한다. 그것이 답답한 것이다. 그래서 <절망>은 집필된다. 자신의 펠릭스를 독자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3.

증명을 위해서 쓴 이 소설의 가장 첫 문장은 "나는 뛰어난 역량을 갖춘 작가이다." 다. 자신의 유능함을 처음부터 뽐내는 것에서 모자라 실제로 소설 자체로서 그것을 보여준다. 일인칭 화자 게르만은 소설 안에서 독자들에게 말은 건넨다. 그와 동시에 그 시대의 소설가들의 문장을 흉내 내기도 하고, 소설의 도입부를 예를 들어서 설명하기도 하고, 자신이 쓸 수 있는 다양한 문체 가운데 몇 가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서 자신이 다른 작가들의 아포리즘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아는 것이 많고, 작가들의 이야기를 비틀어서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작가로서도 역량이 충분하다는 점을 과시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일인칭 화자인 게르만의 과시와 동시에 대부분 잘못되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게르만의 과시는 마치 빈 수레가 요란한 듯이 그려진다.

4.

잘못되었음. 이 사실이 꽤 중요하게 다가온다. 그는 소설 내내 완벽을 추구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지팡이를 남김으로써 자신과 펠릭스의 닮음에 상관없이 완벽한 범죄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다. 그는 지팡이로 방향을 가리키는 펠릭스의 행동을 묘사했지만, 자신이 쓴 그 문장을 망각해버렸다.

5. 남들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게르만이 발견한 닮음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단순한 환상일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은 주인공의 외면에서부터 내면으로 범위를 확장했더니 무언가 잡혀옴을 느낄 수 있었다. 거지꼴을 한 펠릭스의 외면은 게르만의 황량한 내면 (부유함을 유지시켜준 초콜릿 공장은 망하게 생겼고, 주위 인물은 자신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더욱이 자신이 추구하는 삶은 어쩌면 예술가의 삶이 아닐까 싶은 소명의식이 싹트는 것)과 같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6.

게르만이 세운 완전범죄의 실패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교훈을 전해준다. 자신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를 타인에게 대신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 말은 누구도 자신의 삶을 대신해서 살 수 없다는 것과 동일하다.

신의 존재를 부정한 게르만. 그리고 그의 실패를 통해 인간의 실존은 불완전하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다시 내용 1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스트릭랜드나, 디덜러스 같은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결론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또 한 번 절망이 가까이 다가온다.

7.

여기까지(소설에 적힌 절망)는 게르만의 거짓과 세상의 진실을 다룬 이야기다. 하지만, 조금 무리를 해서 게르만의 이야기(펠릭스와의 닮음)이 참이고, 게르만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아르달리온의 편지(세상)에 담긴 시선이 거짓이라면 모든 것이 반전된다. 그것을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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