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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강의 - 중국 최초 통일제국을 건설한 진시황과 그의 제국 이야기
왕리췬 지음, 홍순도 외 옮김 / 김영사 / 2013년 10월
평점 :
난이도 : ★★
1. 사기의 추억
10년 전쯤. 사마천이 쓴 역사서. 사기를 읽었을 땐, 그저 혼란스러움 뿐이었다. 열전이라는 형식으로 인물이 등장하고. 인물이 등장하고. 인물이 등장하고... 어느 시대 어떤 배경의 사람인지도 모를 뛰어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 돌릴 새도 없이 많이 나와서 오히려 기억을 어렵게 만들었다.
지금 그 책을 가져와서 훑어보니 책의 소개에 인쇄된 기전체라는 단어가 유난히 도드라지는데, 그때는 그 단어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전체 : 본기, 열전, 지 등으로 나눠 짜서 서술하는 역사 서술방식. 한 왕조의 통치자를 중심으로 서술되며 왕과 신하들의 전기, 통치제도, 문물, 경제 실태, 자연현상을 두루 다룬다.
2. 왕리췬의 <진시황 강의>
이 책은 사기가 역사적인 배경을 간략히 설명하고 지나쳤던 부분을 훨씬 자세하게 풀어서 이야기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국어판 제목이 진시황 강의이기 때문에 모든 중심은 진나라의 건국과 망국의 흐름에 쏠려있다. 진나라 일족은 주나라의 봉건제도의 혜택을 받은 제후가 아니라. 지위가 낮은 호족이었지만 영토확장의 공을 세워서 그 지역을 다스리는 제후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그 이후로부터 상앙의 법치제도를 받아들여서 진나라는 빠르게 발전한다.
그리고 육국을 하나씩 병탄했던 뛰어난 진나라의 왕과 신하(사기에서 서술되었던 여러 제후국의 이야기. 순망치한의 관계에 있었던 이들이 합종연횡 전략을 맺어 강력해지는 진나라를 견제했고, 그것을 부순 진나라의 원교근공책까지. 전국시대의 유세객들의 피 말리는 싸움도 볼만했다.)들의 활약상이 다뤄진다.
천하를 통일한 후. 군현제를 확립하여 자신을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고 짐으로 부르며, 나중에는 진인으로 불렀던 진시황의 이야기(군현제 확립, 문자, 화폐, 도량형, 거궤 통일)와 진시황과 이세의 학정(진시황의 불로장생의 꿈과 분서갱유사태, 아방궁과 진시황릉 건립, 만리장성 축조)으로 인해서 진나라가 망하게 되는 시간까지 아울러서 다루고 있었다.
3. 정치술
이 책은 현재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주위의 인간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정치술을 향상힐 목적으로는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기를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읽으면 훌륭한 길잡이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꺼운 책에는 다양한 인물들의 위기와 극복에 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의 교훈은 간단하다. 유능한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반간계를 쓰는 사람들을 따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에게 모함이 들어오는 상황을 이해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까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비난이 쏠리는 것은 능력에 대한 고의적인 시기일 수 있고, 아니면 자신이 정말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극복하려는 선택의 방식은 좀 더 신중해야 한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질시를 극복할 수 있는 완벽함을 보일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상항에서 오히려 그에 대한 공을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 넘겨주고 동질감을 키움으로써 자연적으로 자신에게 씌워진 반간계를 걷어낼 것인지. 라는 두 가지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정치술에서 더 나아가서 연나라가 제나라의 복수를 위해 부득이하게 진나라에게 어부지리를 제공하고 힘없이 멸망했던 역사. 진나라와 가장 멀리 위치한 초나라가 쇠락해져서 진나라에게 고스란히 나라를 갖다 바친 역사를 돌아보면서 우리는 눈 앞의 상황이 아니라 그 이상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두려움이 지금은 자신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더라도 훗날 마주칠 때를 대비하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4. 멸망의 공통점
<진시황 강의>에 등장한 많은 나라들은 이미 멸망했다. 그들은 왜 멸망했을까? 라는 질문에서 강제로 단합을 이끌어 낸 것에 대한 부작용들이 엿보인다. 사회통합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누군가의 의도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사회통합이라면 통합 이후의 시간은 통치자의 눈치를 보는 시간. 통치자의 시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패하게 된다는 것이다.
진시황의 통치 이래로 반대 의견은 입 밖으로 새어나올 수 없었으며, 진시황의 앞에는 불로장생의 꿈을 간질여주는 간신배들의 목소리만 들려온다. 진시황은 그들을 믿고, 여러 차례 그들의 활동을 지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진시황을 속였음을 안 이후에는 전국의 술사들을 분서갱유 시키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뿐이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정책은 진시황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주장을 펼치는 학자가 앞으로 나서는 것을 스스로 억제하게끔 만들었고, 자신의 화려한 궁 안에서 머물던 진시황. 때로는 순유의 여흥을 만끽하던 진시황이 고통받는 백성들의 삶을 외면하게 만들게 되어. 전국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고, 명맥을 이어가던 육국의 후손들이 일어나고, 백성들이 그들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결과를 막을 수 없게 되었다.
5. 분서갱유에 대한 변명
이 책은 기존에 알려진 분서갱유와는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우리는 진나라의 법치. 진시황 자신의 통치술을 위해서 자신이 내놓은 군현제에 반대했던 유가의 책들을 불사르고 유학자들을 산채로 땅에 묻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것은 잘못된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원래는 분서갱유라고 부르는 사건으로 희생된 이는 진시황에게 들러붙어서 불로불사의 사상을 전파하던 술사 400여 명 정도고. 진시황은 이들을 홧김에 일회성으로 파묻었다고 주장한다. 시경이나 서경같은 유학자의 책. 그리고 다른 사상가들의 책을 불태운 것은 씨를 말릴 정도가 아니라 진시황의 집권 이전부터 법치가 확립됨으로 인해서 어느 정도는 용인해 왔던 관습이라는 사실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진시황은 근 2000년 동안 중국 대륙을 다스려왔던 황제들에게 잘못된 통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려주는 반면교사로서 최악의 왕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주나라가 멸망하고, 전국 각지에 제후가 일어난 상황에서 그것을 통일하는 자연적인 절차를 통해 탄생한 필연적인 왕이었기 때문에. 최악이라는 구덩이에 모든 악을 덮어씌우는 것은 억울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