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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4
윌리엄 골딩 지음, 안지현 옮김 / 민음사 / 2013년 10월
평점 :
난이도 : ★★★ (3번째 이야기가 조금은 어려웠던...)
1. 힘의 논리
골딩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현실의 풍경은 삭막하고 우울함 그 자체다. <파리대왕>에서 무인도에 불시착한 어린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학습된 제국주의 세계관에 따라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소라를 집어던졌고, 기술문명을 상징하는 안경을 빼앗았다. 그들은 고기를 먹고 싶었고, 멧돼지를 잡을 능력을 보여주는 리더를 추종했다. 무인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승자는 랠프가 아니라 잭이었다.
피라미드. 제목만 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이 소설 역시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파리대왕과의 차이점을 굳이 설명하자면. 파리대왕이 원시적인 환경으로 돌아갔을 때 일어난 일을 그려냈다면, 피라미드는 지금 살고 있는 현실 그대로. 즉, 자고 일어나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에 깃들어 있는 힘의 논리를 풀어놓는다. 이 현실은 소설 내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2013년을 살아가는 현재 우리의 삶도 지배한다.
2. 계급주의 사회
<피라미드>의 핵심은 고착화된 계급주의다. 자본에 대한 양 극단, 직업에 대한 양 극단, 가문에 대한 양 극단.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인식하고 있다. 정말로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정보회사를 찾아가서 상담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유치원생들도 집 소유여부와 평수를 묻어보고 끼리끼리 논다고 그런다고 하던데 정말인지 모르겠다.
이 계급의 분류 속에서 주인공으로 받을어지는 사람들은 항상 명망높은 귀족(지금은 재벌집 도련님)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소설 속 올리버의 부모처럼 주인공 옆에서 바이올린은 연주하는 사람에 만족하지 않고 더 좋은 배역(대령, 중령, 소령)을 허락받기 위해서 꼬리를 흔들고, 그 배역을 맡았다는 사실을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행위를 통해 계급을 나눈다.
사실 소설의 주인공 올리버는 그가 사는 곳의 암묵적인 규범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남의 행동을 보면서 불평하는 올리버 또한 남들처럼 행동했다. 상류층 여인인 이모젠의 약혼이 그에게 던져준 우울함은 자격지심을 만들었다. 그래서 올리버는 자신보다 계급은 낮지만, 외모가 뛰어난 이비를 단지 육체적인 탐욕의 대상으로. 자신의 자격지심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약사의 아들인 올리버는 의사의 아들이 사랑하는 여인이었던 이비를 탐했다는 것에 기뻐한다.
한편, 자신보다 사회적인 계급이 낮은 사람을 선택한 바운스의 삶이 행복했던 것도 아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은 바운스는 가진 것 없는 웨일스 청년 윌리엄스를 택했지만, 윌리엄스는 그녀의 재산으로 성공한 이후 그녀를 버리고 만다. 그녀가 어떻게 쓰러지는지 이웃사람들은 재미난 드라마를 관람하듯이 바운스의 추락을 즐긴다.
3. 혼란
<피라미드>는 독자를 엄청나게 혼란스럽게 한다. 왜냐하면 계급주의에 물들지 않고, 어쩌면 본질에 가까운 사랑을 바랐던 이비와 바운스는 타락의 길로 추락했고, 계급주의를 인정했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던 올리버나 윌리엄스는 훗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올리버가 성장한 후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쓴 소설이고 말이다.
과연 성공의 조건이 계급에서 시작하여 계급으로 결정나는걸까? 낮은 사람은 짓밟고, 높은 사람은 딛고 올라서기 위해 이용하는??
골딩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동시에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이 세상은 이상과 낭만보다는 현실의 실리를 쫓은 사람이 성공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의 실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라미드>같은 모습일 것이다. 이것이 정말 옳은 것인가?" 라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파리대왕>도 그랬던 것 같다.
이것이 정의인가?
26. 내 시야 바로 아래에서 로버트가 나에게 '어떤 표정'을 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표정'은 무엇인가 하면, 제국을 지켜 준 '표정', 혹은 적어도 제국을 진압한 '표정'과 같은 것이었다. '그 표정'과 어쩌면 채찍 손잡이로 무장했을 백인들은 곤봉과 창 속에서 쉽사리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 '표정'은 자신의 우월함을 올리버에게 드러내는 상징
149. 보이지 않게 그려진 선 안의 사람들 소수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누구도 그 선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5. 올리버 :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모든 게 다 잘못되었어요. 모든 게요. 진실도 없고 정직함도 없어요. 오, 맙소사! 삶이란... 내 말은 그러니까 저기 저기에... 하늘만 봐도 그래요. 스틸본은 하늘을 지붕으로 받아들이죠. 마치... 그리고 우리가 몸을 숨기는 것, 우리가 말하지 않고, 감히 언급도 하지 않는 것들이나 우리가 만나지 않는 사람이나... 그리고 사람들이 음악이라고 부르는 그것들. 다 거짓이에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요? 다 거짓말, 다 거짓말이라고요! 역겨워요!"
237. 나는 이완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때 내게 늘 선물을 주었던 걸 유감스럽게도 기억한다. 그들 역시 크리스털 피라미드의 시간에 맞춰 진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