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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알베르 카뮈 전집 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드디어 이방인이다. 사실 소설은 꽤 간단하다. 그런데 이 간단한 작품을 초월하는 분량의 어마어마한 (사실 내용이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그 양에 치가 떨릴 뿐.) 비평이 따라붙는다. 그 비평을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긍정하거나 부정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너무 뫼르소 같은 문장이 되어버렸나….
<이방인>은 이방인(자신이 느끼기엔)일 수도. 이인(타인이 느끼기엔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다. 뫼르소의 관점으로 봤을 때는 매우 불합리한 죽음으로 가는 여정(반대로 검사나 배심원들에게는 매우 합리적인 죽음)을 그렸다. 솔직히 뫼르소가 판결을 받는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상당히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피고인은 뫼르소인데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변론의 목소리를 삼키며 가만히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방인>이 풍기는 부조리의 성격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심판>의 주인공인 요제프 K가 겪은 부조리. 즉,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고 끌려간 상황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방인>의 부조리는 뫼르소 그가 자초한 부조리기 때문에 카프카의 그것보다는 약했다.
2. 뫼르소를 두고 카뮈는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것에 나는 뫼르소를 니힐리스트라는 생각을 덧붙인다. 그는 이미 깨달았던 것이다. 인생의 덧없음을 말이다. 아마도 이러한 니힐리즘은 세계대전의 고통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카뮈의 아버지가 전쟁 중에 사망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유년기를 힘들게 보냈다고….)
그래서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인간적인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사회가 정해둔 절차에 순순히 모든 것을 맡기는 모습을 보인다. 겉은 귀차니즘으로 가득하고 말이다. 쉽게 말해서 뫼르소는 어떤 현상을 되돌리거나 진화시키려고 애쓰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것을 인정하고, 세월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엄마의 장례식의 이질적인 풍경같이 비인간적이며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는 것 같은 느낌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아기를 잉태한 숭고한 순간에 현실적이며 물리적인 불편함을 비집고 끼워둔 채 접근하기도 하고, 고향에 대한 향수는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과는 달리 지긋지긋한 것일 수도 있다는 그의 생각 말이다. 그런 것처럼 뫼르소 역시. 보통 인간들이 일반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관념들을 무시하고, '거짓말을 못하는' 경향을 타인에게 거리낌 없이 선보인다.
나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요즘 한 뮤지컬 배우가 너무 피곤해서 사인회를 하기 싫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행위 또한 잘못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면의 솔직함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그럴 수 있고 자연스러운 심리의 표출이다. 문제라면 뫼르소. 그리고 그 뮤지컬 배우 둘 다 남들이 보는 공개적인 곳에 그것을 표출해버린 것이랄까. 어쨌든 사람이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모두 다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또 너무 도덕적인 이득을 챙기려고 한다면 그것은 드라마나 영화일 뿐. 자신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3. 이처럼 본능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낸 뫼르소에게 왜 부조리라는 벌이 따르게 되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니힐리스트를 벗어나기 위해 고의로 그렇게 했건,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던 그 원인과는 상관없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손에 있는 피스톨을 당긴 그 순간에 뫼르소의 모든 것에 균열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결정지을 그 절정의 순간 그가 고수해왔던 니힐리스트의 면모를 벗어버린다. 뫼르소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해버렸다. 그것은 모든 것에 순응해왔던 그의 일상과는 다른 아주 새롭고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뫼르소는 그 행위를 통해서 자신을 지키는 것에는 성공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순간 어쩌면 마리와 결혼할 수도 있겠다는 감정을 느낄 수도 있었고, 레몽과의 우정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4. 하지만 지금껏 그를 결정지어왔던. 규정지어왔던 니힐리스트적인 삶은 그가 살기 위해 무엇을 한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큰 족쇄가 되어버렸다.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타인일 수밖에 없는 우리가 보기엔 그는 이상한 사람이긴 하지만. 사실 법정까지 가지 않았더라면 그것이 공개적으로 밝혀지고, 또 문제가 될 리 없었다. 다만 좀 특이하고 가까이 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 원래의 뫼르소였다면, 태양에 눈이 멀어 모든 행동을 멈췄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는 니힐리즘을 야기한 사회인가? 아니면 니힐리즘인가? 그것도 아니면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뫼르소. 그의 행동(니힐리즘에서의 탈피라는 변화)인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거짓말과 변명을 할 줄 알아야 하는 인간 본연의 기능에 충실해야 하는건가? 여전히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