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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인간 - Homo Philosophicus
김광수 지음 / 연암서가 / 2013년 6월
평점 :
1.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현재 처한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멋진 순간을 꿈꾼다. 멋진 순간을 꿈꾸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욕망이며 그러한 추구는 옳으면서 좋은 것이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점은 우리의 멋진 순간은 대체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순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돈'으로 수량화되는 기준 이외 모든 형이상학적인 물음에 답변을 거부한 채. 부자가 될 수 없는 현실에 초조해하고 절망하고 체념한다.
이런 체념의 낭떠러지에 서 있는 인간에게 그들 자신이 어떻게 탄생하였는가? 라는 진실을 알려준다면 자신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길 마음. 그리고 지금 닥친 절망을 딛고, 훨씬 큰 물음에 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으로 생각한다.
인간은 극히 희박한 가능성을 이겨내고 이 세상에 태어나지만, 탄생 과정에 자신의 의지는 개입되지 않는다. 즉,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태어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누구의 말처럼 이 세상에 뿌려지거나 내던져진 존재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탄생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주위를 각자의 시선으로 인식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우리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그 생의 약동을 통하여 각자 자신의 삶을 가꿔나가고,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이루려고 노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2. 이것이 존재각성의 첫 번째 과정이다. 그 각성 이후 우리는 이성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감성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성과 감성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선택할 수 없는 양자 같기도 하다. 완벽한 이성(예를 들면, 과학)을 추구하면 감성이 보이지 않고, 완벽한 감성(예를 들면,예술)을 추구하면 이성은 자리를 잃어버리니 말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는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시각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것을 통제하여 이성과 감성 중에서 어느 면을 중점적인 기준으로 삼아 설정할 것인지는 타인의 의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지로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3. 더욱이 그 의지는 권력에의 의지 보다는 삶의 의지에 가까운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삶의 의지는 다시금 누적되고 축적되어서 후세의 인류에게 또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철학하는 인간'이라는 종은 계승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의지를 예술이나 철학이나 종교 같은 산물을 남긴 인물을 우리들은 구도자라고 부른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삶의 의지를 남긴 인물들은 제법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인류의 진보를 이끈 인물이 아닌 퇴보의 길로 이끈 자들은 독단주의자 혹은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라고 불러야 마땅하고 그것을 가려낼 수 있어야겠다.
4. 그것을 가려내는 것은 지금 살고 있는 대중의 몫이다. 대중은 지금 시점에서는 자신의 삶을 바쳐 세월을 뛰어넘는 불멸의 가르침을 남긴 인물들처럼 다른 이들을 이끌 구도자가 될 순 없다. 2002년 월드컵의 기억처럼 대중의 힘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하지만 대세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빠르게 식어버리는 단막극같은 성향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중의 삶과 고통. 그것을 경험하면서 성찰할 대중들 개개인의 순간은 아직 종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순간 구도자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대중들은 자신의 경험치가 쌓였을 때, 대중을 뚫고 나와서 철학하는 인간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5. 6월의 책을 만났다. 많은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