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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란 무엇인가
크리스토퍼 베넷 지음, 김민국 옮김 / 지와사랑 / 2013년 3월
평점 :
1. 만만치 않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책이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를 읽을 때와는 달리 서평을 염두에 두고 읽으니 그나마 뭔가 기억에 남는 것이 있고, 건질 것이 있음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듯하다.
340. 우리가 아무리 도덕을 잘 이해하더라도 거기에는 여전히 숱한 모순이 잠재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런 모순을 개선하거나 없애려는 연구는 아직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일 마지막 문장이자, 이 책의 결론이다. 좀 허무하긴 하지만 이 허무함을 다르게 해석해보자면, 공리주의, 칸트주의, 덕 윤리학, 사회계약론, 마르크스의 도덕, 니체의 도덕관 같은 도덕 이론 하나에 깊이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뉘앙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학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았다. 이것은 작가의 뉘앙스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인지 확실히 모르겠다.)
이론이 아닌, 실제 현실의 윤리적 선택을 내리는 과정에서 행위자를 움직이게 하는 개념을 살펴보면서 이론에서 공감하는 부분만 취하는 정도로만 이용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라고 말한다. 왜 그런지는 책의 1장과 2장에서 직접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여기서 다뤄지는 삶과 죽음의 도덕적인 선택 과정을 지켜보더라도 그 선택에 만족이란 없었다. 계속 반론을 이어붙임으로써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
2. 바로 앞에 읽은 <김약국의 딸들>에서 나는 그들의 선택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러한 착오는 관습적으로 이어져서 그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받아들여진 규범(사회계약론적 특징)에 따랐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선택이 가문 전체로 봤을 때 이득을 줬기 때문(결과론적인 측면에서 공리주의적)이라는 판단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결국, 이 두 가지의 윤리적 판단은 변화하는 시대 앞에서는 그릇된 것이 되었고, 변화에서 그들이 놓친 것은 바로 '행위자의 행복' 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우선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학이었던 것이다. (나라를 잃어버린 시대에 대체 어떤 윤리적 기준이 숨을 쉴 수 있었겠느냐 반론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일제가 대놓고 그들에게 죽어라고 칼을 들이대지 않는 이상 그들은 오순도순 행복했을 것이다.)
사람들이란 자고로 시대적, 문화적으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며 그에 따라서 다른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이 자신의 행복에 우선하여 내릴 수 있었다면 그들은 아마도 좀 더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수고했다며 알지도 못하는 젊은 여자 엉덩이나 툭툭 두드리는(grab) 행위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격려의 의미라고 변명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3. 니체의 <도덕의 계보>의 개념을 차용하여 나쁜 남자가 이성에게 인기 있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니체는 도덕을 부정한 사람이라고 한다. 도덕을 부정한 이유는 도덕이라는 것을 애초에 약자들이 타협하여 만든 것이고, 이러한 도덕적 굴레가 강자의 강함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 세상을 거쳐갔었던 다수의 약자들은 그렇게 소수의 강자를 제거하여 자신들과 동일한 존재로 흡수하여 왔던 것이다.
그렇게 봤을 때, 착한 남자라는 의미는 도덕적인 면에서 우수한 인간이라는 의미와 다름이 없고, 따라서 착한 남자는 약자로 동일시 됨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약자의 개념이 아주 부정적이었다. 순응적인 니힐리스트며 자기혐오의 감정도 지닌 나약한 인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쁜 남자는 그렇지 않다. 극단적인 부분을 제거하고 생각해보면, 대체로 나쁜 남자들은 자기중심적이며 오만하다. 그만큼 자아가 강한 인물이라는 뜻이 된다. 순응적인 니힐리스트. 그리고 에고가 강한 사람. 누가 이성에게 자신을 강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바로 후자라고 생각한다.
오류투성이인 극히 개인적이며 즉흥적인 견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번쩍하며 생각난... 다만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기록해둔... 그러므로 이 글을 읽고 나쁜 남자 행세를 하다 차여도 나는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