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과 본질
이즈쓰 도시히코 지음, 박석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1. TV 프로그램들. 특히, 프로야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저 화면에 등장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저 모습이 프로가 낼 수 있는 베스트가 아닐까?' 라고 말이다. 즉, TV를 통해 우리들에게 전달되는 화면은 엄청난 내공이 쌓인 결과물인 것이다.

 

그런데 이 <의식과 본질>을 읽으면서 TV의 결과물조차도 책에 비하면 미미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의식과 본질>은 뭐랄까... 시각적 외. 모든 감각의 내공. 특히, 내면의 고뇌가 누적된 결과물이랄까? 

 

동양과 서양의 종교와 철학의 개념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책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본질의 3가지 분류에 따라서 하나의 범주로 묶어내거나 해체하는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음...앞으로 이어나갈 글이 옳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를 적어보기로 한다. 

 

2. 

아무리 믿을 수 없다 하더라도 모든 불가능을 배제하고도 남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실이다. 

- 트위터 탐정 설록수, 189p-

 

토실여왕님의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이 문장은 <의식과 본질>에 따르면 세 번째 본질긍정론에 해당함을 알 수 있었다. 모든 불가능함을 제거하고 남은 것이 진실이라는 의미는 곧, 끊임없이 질문을 하면서 불가능을 제거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같은 맥락이고, 그것이 바로 본질이 표층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세 번째 본질론에 해당했다.   

 

3. 나는 항상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생각했다. 책의 개념에 따르면 나는 마히야(보편적 본질의 세계, 플라톤의 이데아)를 버리고 후위야(즉물적이며 경험적인 리얼리티를 표방)로 간 릴케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 역시 릴케처럼 이 세상의 본질의 유무에는 상관없이 내가 중심이 되어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바로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라고 봤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어쩌면 오만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고자 하는 실존조차도. 실존 자체가 하나의 본질로서 작용함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 내가 실존의 영역에서 보려 했던 것은. 즉, 무의식적인 문화적 학습을 통하여 얻어진 관점이라는 큰 틀로 봤을 때, 첫번째 본질긍정론을 따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의식과 본질>의 첫 번째 본질론은 표층의식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심층의식에서 깊게 사물을 보는 것인데, 그러한 바라봄에 있어서 모든 것을 무로 만드는 단계가 선행하고, 그 뒤에 순간적인 번뜩임이 등장하여 존재가 분절화하여 등장한다고 한다. 또한 그러한 번뜩임이 존재하는 문학이 대체적으로 시 문학에 많이 분포한다. 그래서 시에 등장하는 언어는 언어 그 자체가 사실적이지 않고 상징적인 것이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이한 관점도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4. 참고로 두 번째 본질긍정론은 첫번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심층의식에서 본질을 찾는 것인데, 여기서는 샤머니즘처럼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원형의 본질이 있고, 그러한 본질은 표층의식과 심층의식의 가운데에 있는 M의 영역에서 이마주(상징적 이미지화)된 것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고 말한다.  

 

이래의 글은 갈림길을 읽고 적은 '사실'과 '진실'에 관한 생각이다.

 

소설 내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결과에 의하면 '사실'은 인간이 느끼는 개인적인 관념이다. 헌데 그것은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아주 커다란 개념이다. <갈림길>에 의하면 '진실'이란 신이 만들어놓은 것과 같다고 여겨진다. 그에 비하면 '사실'은 아주 작은 것을 다룬다. 그리고 '사실'이라는 것이 '진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실'을 '진실'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평생 노력하는 존재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여기서 '사실'이란 표층에서 부유하는 인간의 판단이고, '진실'이란 아마도 두 번째 본질긍정론의 본질과 유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에 가깝게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은 본질을 찾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한 모습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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