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헛된 기다림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63
나딤 아슬람 지음, 한정아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1. 난 참 둔한 사람이라는 것을 원래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뒤에 읽을 책이 잔뜩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좀처럼 소설에 빠져들지 않는다면 그냥저냥 대충 때우고 넘어갈 법도 한데, 읽히지 않는 글자들을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이번에는 하도 안 읽혀서 혼자 상상하며 연기까지 했다.) 이틀을 붙잡고 읽어냈다.
단순히 읽어낸 것이 아니라 챕터가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이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다양한 관점에서의 날카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마커스가 탈레반에 들키지 않으려고 덕지덕지 붙여둔 진흙이 조금씩 떨어져 나오면서 보였던 벽화처럼 말이다. 나는 마침내 <헛된 기다림>의 막막하고 답답한 시작점을 견디고 무너뜨림으로써 소설 속 인물의 다양한 시점에서 비치는 여러 사유에 와 닿을 수 있었다.
2.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신념을 품고 살 필요와 그것을 표출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제임스의 독백처럼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신념만 있을 뿐 자유는 없었다. 신념도 자신에게 필요하고 자신이 홀로 지켜내야 할 신념보다는 남이 부담해야 할 신념과 그것을 강제해야 하는 신념에 가깝다. 특히, 여성에게 더욱 가혹한 신념을 적용했다.
냉전과 전쟁이라는 온도 차. 미국과 소련의 주도권 전쟁의 틈을 노리고 제각기 이득을 취하려는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의 양대 군벌 간의 세력 다툼. 그리고 이슬람의 영역에 침범하여 그들의 신념에 반하는 이념(교육)을 심는 이방인들을 처단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 탈레반의 학정. 이 모든 흐름에서 철저하게 배제되는 민중의 시선에서의 기록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몰고 왔다.
도대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서술하는 사실주의적 구성과 거대한 세력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비극을 참고 견뎌야만 하는 인물들을 읽어내려가면서 왠지 <제노사이드>가 생각났다. 냉전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전쟁이 끊이지 않는 말살의 소용돌이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나'라는 존재의 관찰과 관점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아픔을 느꼈다.
그러한 삶의 순간순간을 참고, 견뎌내어 그들(아프가니스탄)의 삶을 <헛된 기다림>이 아닌 희망의 기다림으로 바꾸어보려고 애쓰는 소수의 희생자들. 그리고 오늘 이시간에도 희망을 놓치지 않고, 큰 뜻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존경심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