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력서 - 오만불손한 지배자들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이정모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1.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 적혀있는 인간의 이력서. 이력서라고 부르기에는 문명 비판적인 성격이 너무도 강한 인류 진화의 고발서에는 하나가 아니고 열이오. 열이 아니고 백이오. 백이 아니고 천이다. 천도 아니다. 인류의 역사(크로마뇽인의 등장)가 6만 년이라면 6만의 시간 동안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자기보다 약한 종에게서 노동력을 착취하고, 부와 안락함을 쌓아왔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식민지를 거느렸다. 그러한 잉여의 산물로서 지금껏 발전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생물에게 주어진 자연을 독점하면서 살아왔다. 그것 또한 잉여의 산물로 전락시켜 인류의 발전을 위해 사용해왔다.  

 

이쯤이 되면 6만 년 동안 이어져 온 인간은 어떤 종인지 빤하게 보인다. 쉽게 말해서 탐욕의 아이콘이라는 거다. 이러한 탐욕 앞에서 동양고전이 설파한 '본래 선한 인간'이나 '무위자연' 같은 가르침들은 유명무실해졌다. 

 

372. 토머스 홉스는 1651년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은 서로가 매복해 있는 늑대 같은 존재로, 자연 상태에서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경쟁한다고 썼다. 


이마누엘 칸트는 방임 상태에서는 인간의 악한 본성이 민족들 간에 여과 없이 드러나지만, 시민들의 준법 사회에서는 단지 정부의 억압을 통해 은폐되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쇼펜하우어는 윤리론에서 인간의 마음에는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자신의 길을 막아서면 제거해버리려고 호시탐탐 날뛰는 야생동물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콘라트 로렌츠는 공격 욕구를 모든 생물의 원초적 본능으로 보았다. 그러나 종족 보존의 기능이 있는 이 욕구가 인간에게 와서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기능 장애를 보이고 있다. 무기의 발명이 동족 살인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감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레몽 아농은 성욕, 소유욕, 명예욕을 가진 인간은 어려서부터 서로 충돌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우리 모두는 매 순간 '피해자이자 자해자'다. 권력이나 명예 등 나누어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이 분쟁의 대상이 된다. 분쟁의 대상이 서로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면 협상이 가능하겠지만 여기에서도 폭력은 하나의 유혹으로 남아 있다.


375. 인간은 평화를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늘 이웃 부족과 종족을 향해 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고, 개인의 공격 욕구와 집단의 공격 욕구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선이 없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분쟁과 전쟁을 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학자들이 인간이 지니고 있는 난폭한 본성에 대하여 경고해왔었다. (서양의 시각과 역사에 초점을 맞춘 책이기 때문에 동양의 시각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인류의 미래도 틀림없이 약육강식의 그것과 같을 것이며, 매 순간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오래지않아 인류는 스스로 파멸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이러한 인류의 미래는 진실일까?

 

2. 이쯤에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음을 기억하자. 원래는 <인간 이력서>처럼 탐욕에 흔들려서 짐작할 수 없어지는 마음속의 욕망을 경고하기 위한 뜻을 가진 속담이지만, 여기에서는 근본적인 뜻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기로 한다. 억지스럽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살릴 수 있다면 차라리 사람의 속을 모르고 싶다. 한화가 13연패할 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이력서>의 저자 볼프 슈나이더 또한 인류의 미래가 이토록 재미없게 끝나기를 원치 않았다. 에너지의 위기에 맞서 석유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하고,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다가 피폭되고, 인간은 그렇게 지구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채 허무한 마지막을 맞이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것은 위에서 인용한 375페이지의 글 바로 뒤에 이어지는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다.

 

375.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에겐 이러한 생물학에 맞서는 문화적 진화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생물학적 진보에 비해 월등이 뛰어난 점은 그 과정이 수천년이 아니라 수백 년, 아니 수십 년 만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저자가 기대하는 한 줄기 빛은 문화적 진화이며, 문화적 진화라는 은유적 표현에는 지금껏 살아온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책을 읽으며 예측할 수 있었다. 건강 진단 결과. 상태가 매우 위독하다는 경고를 받은 환자가 음주하고 금연하고, 운동해서 건강을 회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이 <인간의 이력서>는 인간이 인간에게 건네주는 건강진단서와 같은 성격을 지닌 책이다. 너 지금 최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충격 효과로 기대한 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진단서를 건네주면서 어떻게 하라는 뚜렷한 메시지를 전하진 않는다. 그것은 어려운 것일뿐더러 모호한 메아리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그저 믿을 뿐이다. 매년 몇%씩. 무한 대의 경제 성장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 한 것임을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빨리 죽으려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인류의 멸종은 언젠가 닥쳐올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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