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노비들 - 김종성

조선 노비들, 천하지만 특별한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1. 이 책은 조선 시대 사료 속에 묻혀있던. 혹은 무심코 지나쳤던 짧은 구절을 통해 노비의 삶을 최대한 복원한 기록이었다. 이러한 기록이 가리키는 방향을 추적하여 결론을 도출해보면 조선 사회는 미국 학자가 주장한 온전한 노예제 사회가 아니라 로마의 노예제와 중세의 농노제가 혼합된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노비가 가축처럼 금전에 의하여 거래되거나, 죄를 지어 노비로 전락하면 죄인 자신뿐 아니라 죄인의 가족과 그들의 자손까지 대를 이어 같은 주인 밑에서 노역하는 모습은 노예제의 모습과 하등 다를 바 없으나. 가족을 이루며 살 수 있었고, 그들에게 부과된 농지를 소작함으로써 생산물을 얻을 수 있었으며. 또한, 그에 대한 세금을 양반이나 왕실에 납부하고 남은 몫은 그들이 소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농노와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2. 그러므로 저자는 조선 사회에서 노비가 수행했던 역할은 우리가 흔히 보는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그저 단순히 잡일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조선의 전체 인구 중에서 약 30%. 많을 때는 50%를 차지하는 노비들은 조선 내에서 유일하게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집단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노비가 생산한 물자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조선이라는 국가는 체제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조선의 왕실뿐만 아니라 조선의 귀족들도 사노비를 수백에서 수천 명씩 거느리면서 그들의 노역과 생산 활동으로 얻는 물자를 갈취했고, 그렇게 그들은 가문의 세를 과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국가와 귀족 모두에게 노비란 스타크래프트 게임 속의 일꾼이었고, 일꾼이 부족할 때는 법령을 매번 수정했다고 한다. 나라의 국고가 비었을 때는 노비의 숫자를 늘렸고, 통제하기 어려워지면 노비의 수를 줄임으로써 사회를 지탱했음을 자료를 통해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부당한 처우가 지속되자 결국 동학농민운동에 의해서 노비제도는 폐지가 된다. 

3.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토록 참혹하고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노비의 한계를 뛰어넘은 인재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박인수라는 이름을 가진 노비는 선비들도 가르침을 청할 정도로 높은 학식을 쌓은 선비가 되었고, 김의동이라는 노비는 엄청난 거부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상업 활동에 뛰어든 노비 가운데는 김의동의 경우처럼 많은 재산을 벌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고 하는데, 그러한 재산으로 그들은 면천이라는 특권을 얻을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면천되는 경우보다는 그들이 재산을 재착취 당하는 경우가 더욱 많았으리라 생각해본다.  

4. 이러한 노비의 생산 활동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이들의 삶은 마르크스가 주장한 착취개념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광복 이후부터 오늘의 한국 사회를 있게 한 서민들의 고된 노동 활동과도 유사하게 느껴졌고, 따라서 조선의 노비의 삶을 추적하는 데에서 자연스럽게 현재 서민의 삶을 읽을 수 있는 관점이 생겨남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