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누구에게나 중2병은 찾아온다. 온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만함과 나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냉소가 뒤섞인 시기. 그것이야말로 중2병의 사춘기요. 아직도 완전히 뿌리치지 못한 나의 고질적인 병의 이름이리라. 

 

보통 이러한 착각은 군대를 갔다 오면 해소가 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고 느끼다가 어쩔 수 없이 잠시 군대에 가 있는 고작 몇 년의 시간 동안. 세상은 내가 있는지 없는지 신경을 쓰지도 않고 잘 돌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모습을 보고 분노하지만, 그 분노는 잠시 어느덧 체념으로 바뀌고,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를 기원하고 요청한다.  

 

그리고 회사 생활의 이면에서도 이러한 중2병은 다시금 고개를 쳐든다. 회사의 부조리에 마주하게 되는 순간 내가 그만두면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걸로 생각하지만, 퇴사 후에도 여전히 굳건히 버티고 있는 회사의 모습은 그곳에서 떨어져 있는 나를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회의 변하지 않는 속성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콜필드의 투쟁이 부질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처럼 잠깐 분노하지만 결국은 참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콜필드는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과는 달리 잘못된 세상에 그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저항한다. 그리고 독자는 그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나도 한때는 그랬었지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이러한 감정이입을 통해 느끼는 대리만족의 힘이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2. 이 소설은 대리만족 후 그 만족감만 빼먹고 본질을 폐기하는 소설이 아니다. 즉,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중2병이라고 해서 중2병 환자인 콜필드에게 "네가 이상한 놈이야"라며 모든 비난의 화살을 쏘아 대는 것이 아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콜필드의 눈에 비친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고 공감하고 또 더 나아가서 고쳐보자는 데에도 상당히 큰 목적이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공감과 수정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콜필드의 냉소를 통하여 어른들이 조직해놓은 불편한 세상의 겉치레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콜필드가 가장 의미 없다고 여긴 어른들의 겉치레. 대표적으로 '행운을 빈다.'라는 인사말. 한국식으로 고치면 '나중에 밥 한 끼 같이 하자' 혹은 '밥은 먹었냐?'와 같은 말.

 

마주한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한 공백을 채우기 위해 남발하는 본래의 좋은 뜻에 기대어 위장된 언어의 나열을 콜필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말에는 진정성보다는 단순히 어색함을 모면하기 위한 꼼수만 있다는 것을 알아채 버렸기 때문이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앞서 읽은 <생의 이면>에서도 콜필드의 현실과 비슷한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의 부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 박부길이 선택해야만 하는 패륜의 늪. 그리고 가문의 영달을 위하여 정해진 강제적인 삶이 바로 콜필드가 바라본 세상과 유사한 성질의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우회할 것인가? 그것은 오직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3. <호밀밭의 파수꾼>은 콜필드의 동생 피비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소설이다. 콜필드는 피비에 의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피비의 존재가 완충재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 더러운 세상(모두가 그를 밀어냈거나 혹은 밀어내거나)에서 관계라는 관점에서 콜필드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지핀 유일한 사람이 바로 피비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 두번의 기회가 있었다. 스펜서 선생과 앤톨리니 선생. 그러나 믿음을 주진 못했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소설의 구성에서 마지막 기회가 되어버린 피비는 그의 일탈의 추이를 지켜본 후에 '오빠 행운을 빌어'라는 식상한 말을 건넸던 것이 아니라, 여행 가방을 싸들고 그와 함께하기를 결심한다. 자신이 원했던 연극의 배역을 마다한 채 행동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러한 피비의 행동에서 목적의식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인간 존재의 순수성을 느꼈다. 그 순수함을 바라보면서 나는 샐린저라는 작가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그것을 가능케 한 인물은 바로 피비라는 존재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녀의 행동에 담긴 진심을 보면서 샘솟는 치유의 감성을 느끼는 콜필드의 모습을 통해. 콜필드가 털어놓았던 꿈.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자 했던 꿈이라는 것이 어쩌면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무엇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는 자신의 일탈을 잡아 줄 파수꾼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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