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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평점 :
1. <생의 이면>은 소설가 박부길. 그는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는가? 에 대한 평론의 형식을 차용한 소설이자. 그 평론에 깃든 한국 사회. 그리고 인간의 부조리를 다룬 소설이었다. 어느 정도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박부길의 모습에서 <인간실격>의 요조를 발견하게 되는데. 다자이 오사무와 이승우를 동시에 검색창에 입력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런 생각을 했던 분들이 꽤 많았음을 알 수 있었다.
요조처럼 유년기의 박부길도 세상에 강제로 내던져진 존재나 다름이 없었다. 그가 속한 세계는 이미 어른인 큰아버지가 세워둔 가치관의 지배(무너져가는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고등고시를 패스하기를 원함) 아래에 들어가 있은지 오래였고, 이웃의 터부에 오르내리지 않으려 조심했던 매우 경직된 사회였다. 그러한 기준에 맞지 않았던 부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감금당하거나 추방당함으로써 존재를 말살 당했다. 그렇게 그의 가족은 감금, 추방, 내던져짐이라는 정의로 존재해야 했다.
그래서 부길은 고향을 탈출한다. 그에게 있어서 고향이란 밀란 쿤데라가 말했던 <향수>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진 공간이었다. 그러한 간극 차와 그것을 드러내는 거침없는 내면의 언어 때문에 전체적인 소설의 분위기는 인간에 대한 혐오가 짙은 아주 음울한 단조의 형태를 띤다.
하지만 부길은 요조와 달리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다. 삶을 견뎌내어 마침내 소설가가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그가 속했던 세계를 보기 좋게 극복했다고 해석해도 될 듯한데, 그런 극복에 대한 서사를 다뤄내기 위하여 <생의 이면>은 몇 차례의 비틀기를 시도한다.
그리하여 이승우 소설의 키워드 중 하나인 사랑과 종교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것의 등장은 상당히 극적이었다. 더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지옥 같은 순간에서의 도피. 그 마지막에 운명처럼 다가온 피아노의 선율이 바로 사랑과 종교였다. 그곳에는 부길과 똑같은 삶을 살았던 종단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부길은 마치 영화 <늑대소년>의 철수였고, 그런 부길의 눈에 들어온 종단은 순이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이 사랑과 종교와의 만남을 상징하는 부길과 종단의 관계는 순이와 철수의 길들여짐과는 사뭇 다른 전개로 이어진다. 부길은 철수와 달랐다. 그는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몰랐던 것이다. 아니. 기다림을 알았지만 어쩌면 기다리기가 싫었는지도 모른다. 부길은 그녀를 자신의 여인으로 소유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왜냐하면, 극적인 운명으로 만난 종단을 위해 부길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낯익은 결말이라는 소설의 소제목처럼 그러한 집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고, 낯익은 결말로 그의 사랑은 마침표를 찍는다. 부길의 삶의 목표는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방향타를 잃어버린 부길은 다시 방황한다. 그러다가 결국 군에 입대한다. 그리고 제대한다.
군에서의 생활이 그에게 어떤 도움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간에 부길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그러한 행위 자체가 더는 불가능해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에서 삶의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써내려갔다. 시간이 흐른 어느 순간 부길은 다른 누군가에 의하여 삶을 조명받는 정도의 위상을 가진 소설가가 되었다.
작가가 말한 극복이 혼신의 노력을 담은 한계의 도전.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성격이 아닌지라 끝이 약간 허무했고, 그가 독서를 하게 된 원인이 세상에 대한 회피나 두려움이건 간에. 어쨌든 책을 그렇게나 탐독했던 사람이 사랑과 종교의 울타리 속에서 살 길을 모색하지 않고, 마치 동물처럼 탐욕스럽게 사랑과 종교를 다룰 수 있었는지. 약간의 의구심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