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1. 학교 폭력과 왕따. 이것은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서 분명히 발생하고 있을. 며칠 전 뉴스에서 또다시 헤드라인으로 보도된 한국사회의 큰 문제다. 그와 동시에 창착자들은 이 문제를 비판함으로써 의식을 공유하거나 사회적 관심을 띄우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신의 선함을 포장할 좋은 재료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들의 창작물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실적 서사를 이어가는 선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다.

 

학교 폭력과 왕따를 앞에 두고 그들은 1. 자신을 단련하여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직접 왕따 문제를 극복하거나. 2. 이미 가해자에게 희생된 경우에는 피해자 가족에 의한 사적 복수로 결말이 완성되거나. 3. 힘없는 피해자를 대신하여 직접 관련되지 않는 제삼자가 가해자에 대한 복수를 대신한다. 는 세 가지 시나리오 안에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십자가>의 새로운 관점과 기존에 발표된 작품에 담긴 결말을 비교하여 생각하다 보니 학교 폭력과 왕따를 해결하는 열쇠를 쥔 사람은 국가나 법이나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있는 당사자와 그 가족에게만 문제를 전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74. 

나이프의 말.

십자가의 말.

 

나이프의 말은 가슴에 박히지. 당연히 굉장히 아파. 쉽게 일어나지 못하거나 그래도 치명상이 되는 일도 있어. 하지만 나이프의 말에서 가장 아플 때는 찔린 순간이다.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어느 쪽이야? 넌 나이프로 찔렸어? 아니면 십자가를 등에 졌어?

 

 

2. <십자가>는 달랐다. 당사자와 가족의 문제라는 관점을 벗어나서 같은 교실에서 생활했던 학생들에게도 그 책임을 묻는다. <십자가>는 방관자에게 십자가의 말을 등에 씌운다. 사건 이후 자신의 내면에 들러붙은 심리적인 죄책감을 솔직한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왕따 문제가 '나만 아니면 돼'라는 좁은 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방관자들에게 알린다. 

 

십자가를 짊어진 이는 후지슌의 유서에 이름이 적혀 있던 절친 사나다 유와 그의 짝사랑 나카가와 사유리였다. 유짱의 미래 시점에서 과거를 반추하는 방식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십자가>에서 유짱과 사유는 십자가의 말을 공유하며, 후지슌을 떠나보낸 가정의 절망과 고통을 두 눈으로 바라보며 그렇게 죄책감을 느꼈었다. 왜 내 이름이 유서에 남아있었는지 영문도 모른채..

 

270. 인간은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울 때 절망할까? 아니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데,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을 때 절망할까?? 

 

3. 후지슌은 왜 그들의 이름을 유서에 남겼을까? 왜 절친이라고 부른 친구와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하고선 그렇게 떠나갔을까? 그가 죽을 만큼 힘들었을 때,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후지슌은 스웨덴에 있는 거대한 십자가만이 자신의 영혼이 머물 곳이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십자가>는 너무나 슬픈 이야기가 아닌가?

 

왜 유짱은 나이가 들어서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학교에 갈 때가 되었을 때쯤에서야 후지슌이 절망했던 그 감정에 대해서 온전히 깨닫게 되었을까? 도대체 왜? 왜? 왜?   

 

344. 슌스케가 죽고 나서... 자네는 어떻게 살았나? 슌스케를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등에 짊어지고, 어떻게 어른이 되었지? 예전에 주었던 슌스케와의 추억 노트처럼 자세히 써줄 수 있겠나? 

 

 

4.문장이 너무 딱딱하게 써진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좀 더 부드럽게 풀어낼 수 있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본다. 왕따라는 무거운 주제를 마주하고 글을 풀어내려니 딱딱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데, <십자가>는 딱딱한 문장으로 이뤄진 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아쉽다. 그 느낌을 간접적으로나마 살려주고 싶은데 나의 능력으로는 무리인 것 같다. OTL

 

284. 사람의 기억은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의 사건이나 한 사람에 얽힌 추억이 강물에 떠내려가듯 조금씩 멀어지고 잊힌다면 이야기는 간단하다. 하지만 실제로 추억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간다. 충분히 멀어졌다고 여겼던 추억이 갑자기 등골이 오싹할 만큼 생생하게 다가오고, 손에 들고 있던 것이 파도에 씻기듯 한꺼번에 먼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바다는 잔잔할 때도 있고 거칠어질 때도 있다. 밀물일 때도 있고 썰물일 때도 있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추억은 조금씩 바다로 떠내려가서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그때 우리는 겨우 하나의 추억을 잊어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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