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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시 - 개정판 ㅣ 에디션 D(desire) 2
제임스 발라드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1. 에디션 D라는 문학시리즈를 처음 만났다. 이 시리즈는 인간의 욕망과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욕망과 에로티시즘이라... 그것은 선보다는 악에 가까운 이야기. 지킬박사보다는 지킬 박사 내면의 악마. 하이드를 묘사한 작품들이다. 그러므로 이런 책을 읽을 때는 투철한 윤리 의식을 아주 잠시만 한 쪽에 놓아두고 즐길 필요가 있다.
이런 소재를 다룬 문학 작품을 손에 들고, 갑자기 성인군자가 된 것 마냥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어 외설적이라던가 폭력적이던가 비현실적이라고 비난할 거면 차라리 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저자나 독자 양쪽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리뷰에서는 도덕성을 고려하지 않고 책을 읽은 소감에 대하여 쓸 예정이다.
2.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책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발라드의 책이 출간되기 전에 <크래시>을 받아서 읽어 본 편집자가 작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책의 작가에게는 정신과 치료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매우 공감이 가는 평가다.
도덕적 잣대를 버리고 책을 읽기로 했지만. <크래시>에서 묘사되는 성애는 너무나도 무분별하여 눈살이 찌푸려진 적도 많았다. 직접 읽어보면 알겠지만, 상상 이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평가와 찌푸려지는 묘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그만큼 <크래시>에 녹아있는 작가의 관점이 뚜렷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좀 더 작가에 대하여 살펴보니 제임스 발라드 작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은 작가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작가들은 하나의 사물을 보더라도 완벽하게 다른 상징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전거 안장과 손잡이로 황소 머리를 만들어낸 피카소의 작품이나, 별다를 바 없는 변기 하나를 갖다놓고 샘이라고 부른 뒤샹의 작품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들이 사용한 변기나 자전거처럼 제임스 발라드가 포스트모더니즘을 위해 차용한 이미지는 자동차. 그리고 자동차 사고. 몸에 새겨진 흉터. 이렇게 세 가지다. 보통 자동차에 대한 우리의 고정된 관점은 우리 생활에서 이제는 아주 익숙한 이동수단으로 바라보는 정도이고, 소설로 폭을 넓혀 생각해보면 로드무비를 가능케 해주는 수단의 성격으로 사용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자동차의 고유관점이 변화하고 있다. 사람들은 단순한 이동수단이라는 도구의 영역을 넘어 더 좋은 차. 멋진 차. 남들과는 다른 차를 타는 것을 꿈꾼다. 그리고 이러한 자동차 사랑은 애인을 바라보는 것과 유사한 모습으로 진화된다. 실제로 어떤 이는 자기 차를 애인 다루듯이 애지중지하기도 한다.
발라드가 착안한 개념은 바로 이와 같은 새로이 형성된 관점이다. 그래서 제임스 발라드는 자동차를 애인이라는 생물적인 요소로 재해석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2가지는 무엇일까? 자동차 사고는 남·녀가 충돌하는 바로 그 순간. 서로의 몸이 상대의 몸에 의해 충돌하여 찌그러지는 그 상태를 의미하며, 자동차 사고로 생긴 흉터는 충돌 중의 열락으로 서로의 몸에 새겨지는 생채기 같은 것이거나 또는 충돌한 이후에 새겨지는 문신의 의미를 뜻한다. 인간에 대한 새디즘이 자동차라는 물질로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3.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크래시>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변태성향을 갖게 되는 데에 있다. 사고 순간의 쾌락이 어떤 것인지 솔직히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나로서는 사고의 순간이란 그저 벗어나고 싶은 순간일 뿐이었건만) 그들은 자동차라는 공간 속에서 격렬한 충돌을 벌인다. 그러한 충돌의 순간은 부부가 맺은 서약도 가로막을 수 없었다. 남편이 운전석에서 룸미러로 뒷 자석을 보고 있건만, 아내는 보란 듯이 다른 남자. <크래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 '본'과 질펀하게 충돌질을 벌인다.
그렇다. 크래시에서는 본이라는 인물은 가장 탐구할 만한 인물로 등장한다. 1인칭 나의 관점에서 특이하면서도 닮고 싶은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탐색하는 것. 그것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의 '나'가 조르바를 바라봤을 때, <노란새>에서 '나'가 머프를 바라봤던 그 시점과 일치한다.
본이라는 인물은 욕망의 끝을 달리는 인물이다. 그는 영국에서 가장 황홀한 존재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얻기 위해서. 그녀가 탄 차량에 충돌할 순간을 노린다. 그는 그녀에게 <크래쉬>의 쾌락을 전해주기 위해, 몇 년 동안 차량 파손의 현장과 인간의 사고 현장에 들러서 순간을 카메라에 채집하며 그 순간을 준비한다. 현장의 다른 사람들은 사건 조사를 위해 카메라에 순간을 담지만, 그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충돌의 쾌락을 상상하기 위해서 카메라에 담는다.
그뿐만 아니라, 전문 스턴트맨을 고용하여 직접 시나리오도 작성한다. 과연 이런 치밀한 리허설에 의하여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어떻게 되었을까? 본의 욕망에 그녀의 육체가 무너졌을까? 무너지지 않았을까? 그 방향을 탐색하며 순간을 위해 살아가는 기이한 본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도덕적 잣대를 버리고자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너무나 파격적인 설정이라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기에는 상당히 망설여지는 그런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