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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 누구나 생애 한 번은 그 길에 선다
윌리엄 폴 영 지음, 이진 옮김 / 세계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1. 혹시 자신의 내면에 관한 풍경화를 손수 그려본 적이 있는가? 갑자기 이러한 질문을 던진 이유는 <갈림길>은 내면의 풍경화를 그려 나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갈림길>의 풍경화는 한 번 그리면 고칠 수 없는 풍경화가 아니다. 내면의 상태를 그린 풍경화이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잡초와 벽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풍경화에서 장미가 만발한 광활하고 밝은 풍경화로 새로이 그려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고쳐 그리기의 과정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개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긴 했지만, 그것을 이루는 데는 신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조금은 아쉬웠다.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신에 대하여 부정과 미움의 마음을 안고 살았던 그를 마지막까지 놓아주지 않았던 것은 바로 절대자의 힘이었다. 그래서 현재 무신론자에 근접해 있는 나로서는 갑작스런 복병을 만난 셈이었다.
2. <갈림길>은 문학과 드라마라는 장르의 소재로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괜찮은 작품(흡사 <예스맨>처럼 실제로 신의 역할이 배분되는 영화)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를 리얼리티의 영역으로 끌어 올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실제로 소설의 영성에 대하여 99% 이상의 리얼리티로 소화하실 분들이 계신 것을 고려했을 때, 과연 하느님과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한 나의 견해는 대략 별이 표시하는 정도쯤 될 듯하다. 더욱이 지금 시점의 나는 사후세계는 불투명(존재하지 않음)한 것을. 죽음이 생의 끝이라는 생각에 긍정의 시그널을 이미 보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윌리엄 폴 영은 그 충실성(신이 존재 하지 않은 현실에 매몰된 삶)의 결론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스크루지 영감의 개념으로 만들어 두고, 이야기를 진행하지만, 나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 꼭 그런 모습을 가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훨씬 더 가치 있는 활동(신이 존재 하지 않지만 삶을 사는 삶)을 하는 사람도 많으리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첫단추에 대한 의문도 약간은 존재한다.
3. 이 책을 읽으면서 갑작스럽게 생긴 궁금증 하나가 있다. 어쩌면 인생은 유신론과 무신론의 사이클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의 권유에 의해 신을 믿었다가, 자의식이 발달하는 나이. 대표적으로 청춘의 시기에는 니체의 초인론에 흠뻑 빠져서 무신론자가 되어.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자신을 단련시키고, 채찍질하다가.
죽음이 가까워지면 지금껏 쌓은 초인이 되고자 노력했던 자신의 성취가 생각한 것보다 작아 보이고. 그리하여 인간의 유한성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되며, 그래서 다시 한 번 신과 함께 사후세계에서의 새로운 삶을 그리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려는 행위로서. 이 책처럼 내면의 풍경화를 가다듬고 풍경화를 완성하는 동시에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4. <갈림길>은 <자유의지는 없다>와 <지금, 철학할 시간>에 이어서 자유 의지에 대한 개념을 정리할 수 있게끔 해줬다. '사실'과 '진실'이라는 두 언어로서 말이다.
소설 내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결과에 의하면 '사실'은 인간이 느끼는 개인적인 관념이다. 헌데 그것은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아주 커다란 개념이다. <갈림길>에 의하면 '진실'이란 신이 만들어놓은 것과 같다고 여겨진다. 그에 비하면 '사실'은 아주 작은 것을 다룬다. 그리고 '사실'이라는 것이 '진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실'을 '진실'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평생 노력하는 존재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란 있지만, 그것은 '사실'에 국한된 것이고, '진실'이라는 것은 신에 의하여 결정지어져 있다고 해석하면 된다. 이것은 <갈림길>에서 주장하는 유신론의 입장을 빌어 해석한 개념이다. 만약, 자유의지에 관한 논쟁에서 무신론에 의한 해석을 해본다면 유신론의 반대가 될 것이다.
즉, '사실'은 이미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각각의 존재에게 이미 '진실'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실'의 크기가 '진실'의 크기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그렇게 본다면 무신론자에게는 자유의지란 아주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367. 믿음에는 모험이 따르죠. 관계에도 항상 위험이 따르고요. 하지만 결론이 뭔지 아세요? 관계가 없다면 이 세상은 아무 의미도 없어요. 어떤 관계는 다른 관계보다 좀 더 엉망이고, 어떤 관계는 오래가지 않고, 또 어떤 관계는 힘들어요. 반면 어떤 관계는 수월하기도 하죠. 어찌 되었든 그 모든 관계가 다 소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