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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의지는 없다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
샘 해리스 지음, 배현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1. 사전적 의미로 자유 의지는 외적인 강제ㆍ지배ㆍ구속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뜻한다. 그런데 샘 해리스의 <자유 의지는 없다>에서는 이 개념을 완전히 부정한다. 쉽게 표현해서 우리가 어떤 사물을 접하며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과 행동들을 우리는 자유 의지로부터 생성된 고유한 관점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 알고보면 우리가 나고 자란 환경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학습된 관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 배경을 통한 학습에 의해서 실존은 더 이상 나만이 가진 고유의 존재가 아닌 존재가 된다. 어린왕자와 함께 길들여지는 장미와 여우라는 존재는 자유 의지에 의하여 형성 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름 모를 어린왕자가 똑같이 형성시킬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왕자에 의해 규정되는 장미와 여우 뿐만 아니라 장미와 여우에 의해 규정되는 어린왕자라는 존재 자체도 형성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자유 의지라는 것이 없다면 말이다.
2. 이처럼 <자유 의지는 없다>에서 주장하는 개념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무의식이 만들어낸 정보가 인간의 행동과 선택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라는 기존의 책에서 읽었던 주장과는 다른 개념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는 <자유 의지는 없다>에서 주장하는 바는 행동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 아예 행동을 결정시켜버린다.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행동이라는 과정에서 의식을 완벽히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기존의 책(새로운 무의식)에서 읽어낸 이해에 따르면 무의식이 만든 정보는 본질에 대한 편향이나 왜곡은 존재할지언정. 어쨌든간에 그 정보는 가공할 수 있는 정보로 저장되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다루는 것이 의식이 되므로, 무의식의 상위에 속하는 의식이 바로 자유 의지. 자유 의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그러니까 이 책에서 말하는 절충안(양립가능론)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유 의지는 없다>의 주장을 따른다면. 즉, 의식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면 엄청 우울한 결과가 유추된다. 칼 융이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의 내용. (자기 지식을 쌓는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을 이해할 수 있기 위해 제시한 방식인 자기 지식을 쌓는 행위가 부정당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우리가 획득해온 태생적인 성장 환경과 초중고의 기본 교육이 이미 길을 닦아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해서 나에서 나온 관점은 나의 관점이 될 수 없는 것이고, 너에서 나온 관점은 너의 관점이 될 수 없게 된다. 모든 사람의 관점은 우리가 그 관점을 말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이미 어딘가에 형성되어 있는 관점이고, 너와 나. 그리고 모든 사람은 그러한 관점이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논의의 전개로 인하여 내가 갖고 있던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관점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개인의 경험을 통해 나온 고유한 성질의 관점이기 때문이다."란 생각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3. 이래서 토론이 필요한거구나 싶게 만드는 책이 <자유 의지는 없다>라는 책인 것 같다.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이 안된다. 이미 1과 2번에 걸쳐서 만들어낸 내 생각을 보면서 나도 이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모를 결론으로 정리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