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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
칼 구스타프 융 지음, 김세영 옮김 / 부글북스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1. 현대 개인은 이미 물질화되었다. 과거 포드주의의 태동. 그리고 스펙이라는 단어가 탄생한 한국사회의 풍경으로서 이를 증명할 수 있다. 물질화 된 개인은 자신의 삶과 개성보다는 조직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만족시키려는 인재가 되고자 온 힘을 다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삶을 여유롭게 살아가는 방식 가운데 가장 훌륭한 방식으로 통한다.
그러한 방식은 바로 과학적 합리주의가 평균치로 설정해 둔 지점이다. 이 평균을 위하여 전 세계의 평균을 벗어난 존재들은 부족한 부분은 정밀하게 조직된 컴퓨터나 혹은 그리고 <토크쇼 안녕하세요>처럼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될 대중들의 투표에 의하여 메워진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은 평균을 향해 달려가는 것 마냥 조작된다.
2. 국가나 종교. 그리고 기업. 그리고 열거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조직은 모두 큰 덩어리들이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이익을 위하여 상부상조하는 조직들이다. 칼 구스타프 융의 책은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조직을 부정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나쁘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아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칼 구스타프 융이 우려하는 바는 개인이라는 존재의 의미가 오로지 조직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한정되어지는 것이고, 그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도덕적 오류에 대처(혹은 인지 조차) 할 수 없는 존재로 격하되는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와 같은 존재의 격하는 조직적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형성되는 원인에 대한 결과라는 것이다.
3.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에서 내세우는 문제 제기에 대한 답은 단순하다. 모든 것의 기초가되는 개인이 스스로 발전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직이 그들에게 부여하려는 족쇄를 벗겨내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최소한 어떤 성질의 것인지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과 악의 이분법 속에서 스스로 선이 되려하지 말고, 선이라고 생각하지도 말 것이다. 니체의 사상처럼 개인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과 악을 모두 불러내어 한 판 진하게 갖고 놀아보기를 권한다. 그러한 놀이를 통하여 개인은 이 세계에 대한 '자기지식'을 획득한다.
그러한 선과 악의 놀이의 종착지. 세상의 어떤 무엇과 같지도 않고 유사하지도 않은 '자기지식'. 칼 구스타프 융이 추구하는 개인의 이상향은 자유주의로 향한다. 개인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다. 마치 제임스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토해냈던 그러한 자유처럼 말이다.
4. 이 책에서 대중이라는 용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대중은 무식하며 무법적이거나 문화, 지성, 합리성이 결여된 상태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1인 1표제가 행하여지는 대중사회이다. 모순점은 있지만 그것을 부정할 순 없다.
대중이라는 개념을 생각하다 보니 <나는 전설이다>의 최후의 인간에까지 의식이 확장되었다. 이 책(칼 융의 책)의 개념에 따르면 <나는 전설이다>주인공이자 최후의 인간은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던 소외된 개인이다. 그리고 좀비는 조직의 이념에 충실히 학습된 개인. 즉, 쉽게 말해서 대중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한 개인이 타의적으로 대중화가 되는 과정을 그리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의 내면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이유는 홀로 남은 고고한 개인이 대중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을 처음부터 좀비로 봤다는 점이다. 고고한 개인 자신이 유일한 선이고 유일한 정의로 봤다는 점이다.
나는 선이고, 당신은 악이다. 나는 인간이고, 당신들은 좀비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좀비를 볼 생각조차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만약, 최후의 인간이 니체의 선과 악의 치고 받는 놀이를 접했다면 좀비는 좀비가 아니었을 것이고, 그 또한 고고한 인간으로 형상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중적이거나 말거나. 아마도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