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킹의 후예 - 제1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영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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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감상을 남기기가 너무나 어렵다. 왜냐하면 <체인지킹의 후예>의 "우리는 체인지킹의 후예일 뿐이야."라는 자조와 냉소가 한데 어우러진 한 마디를 실은 반대편의 논지가 너무나 치밀하고 섬뜩하게 와 닿아. 정작 그가 계획했고 말하고자 했던 변증법을 위한 결말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말은 결말이고, 자조는 자조고, 냉소는 냉소고, 그리고 나는 나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영호의 말처럼 아버지가 없는 것과 아버지는 없지만, 어머니가 있는 것이 다르다면 그 차이는 얼마나 클까? 영호 자신이 이런 삶을 살게 된 이유는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완전 부정과 완전 긍정이라는 논리로 민에게 소리칠 수 있을까? 완전 부정의 영역에 들어있는 민의 주장을 100%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완벽한 부정과 긍정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흩어진 각종 정보의 인력에 취해서 자석에 끌리듯이 흐물흐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공포를 극복하지 못한 채. 지금도 트라우마를 안고서 삶의 흐름을 이어간다는 고백을 함으로써 성립된다. 이영훈 작가는 이처럼 기존의 여러 작가들이 제기한 주장에 반하는 주장을 펴고 있긴 한데.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앞으로도 여전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체인지킹의 후예>에서 과거의 트라우마로서 영호의 정체성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공개하는 상징은 영호의 등짝에 선명하게 박힌 흉터다. 그 증거를 통하여 영호는 민 당신이 이야기한 인력의 세계는 망상이요. 앞으로 전개될 트라우마의 극복이야말로 각자에게 남겨진 몫이 되리라는 것을 알려온다. 

 

그 방식은 어느 누구도. 그리고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냥 헤쳐나갈 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민 역시 어쩌면 영호와 같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야기는 바람직한 방향(자신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했던 물질의 극복. 그 극복은 안이요. 민. 그리고 이제는 한가족이 된 샘의 도움)으로 마무리된다. 

 

결국, <체인지킹의 후예>의 이야기는 최근 형성된 잉여·오타쿠론으로 사회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를 내재한 사람들이 그것을 회피(이 영역에 잉여론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로 해석한다고 볼 수 있다. 

 

영호와 민. 그들뿐만 아니라, 안이요 역시.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젊은 세대. 특히, 그의 아들이 자살하는 것을 막지 못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샘의 경우에도 단순한 이상한 변태같은 녀석이 아니라 친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섞인 기억의 트라우마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윤필 역시.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고 보험금을 타낸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의 행성을 제거하는 극본을 쓴 최후의 일인이 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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