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
실뱅 테송 지음, 임호경 옮김 / 까치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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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뱅 테송. 2011년 에세이 부문에서 메디치 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인데 네이버 책에 검색해보니 이 작가의 에세이가 한국어 번역으로는 이 책이 초역본이었다.

 

게다가 작가의 정보조차 전무한... 결국, 상을 받지 않았다면 이토록 쩌는 필력으로 단련된 시적인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작가의 작품을 한국어로 볼 수 없었을 거란 안타까운 진실에 마주치게 된다. 그렇다고 프랑스어를 배울 수도 없고 쩝.

 

대체 왜 안타깝냐면. 실제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소름이 돋았는데. 아무 생각없이 "어디 한 번 읽어볼까나"로 시작해서. 뒤적뒤적. 이러다가 "오호라 괜찮은데?" 이러다가 "헉!!!!! 이게 뭐야?", "허~~~! 이 필력은 정말 미친다." 거짓말 안하고 진짜. 내가 이랬다.

 

2.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오호 <월든>의 작가 소로우스럽구나'라는 느낌이었고, 프랑스 웹페이지를  찾아보니 그를 '로빈슨크루소'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그 수식어에 걸맞게 실뱅 테송이라는 작가는 딱 그런 이미지처럼 생기긴 했다.  

 

   

 

일단, 외모는 그렇다고 쳐도 로빈슨크루소와 실뱅 테송은 먼 거리에 있다. 크루소는 배가 난파되가지고 어쩔 수 없이 무인도에 불시착했다 개고생 실컷하다가 환경에 적응(정복?)해서 "우하하 내가 왕이다." 이렇게 된 거고. 그런 의미에서 <로빈슨크루소>는 자연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가에 초점이 맞춰지는 상징물이고.

 

산업혁명 이후. 산업의 발달에 따른 비인간화에 환멸을 느끼고 찾아간 곳의 자연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했던 <월든>의 소로우가 차라리 실뱅 테송과는 훨씬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완벽하게 같지는 않지만. 어찌되었건 간에 실뱅 테송도 파리의 복잡함에 정신적으로 지쳤기 때문에 자신이 쓴 버킷리스트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시베리아에서 6개월을 보내는 여행을 계획한 것이니까 말이다. 

 

3. 소로우의 <월든>은 법정 스님께서 <무소유>에서 하도 월든, 월든하셔가지고, 읽어본 책인데 그때는 공업도시의 산물인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이제 겨우 책이라는 걸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던 때라 "와나! 이 형님은 대체 듣도 보도 못한 식물 동물 얘기 언제까지 할거지 응?" 이러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만끽하기 보다는 시각적으로 그 풍경이 전혀 상상이 가질 않아서 무턱대고 짜증만 냈던 기억이 있는데.

 

 요번에 만난 실뱅 테송의 일기. (아 참. 막 쓰다보니 이 에세이가 6개월 간의 기록을 담은 일기라는걸 이제야 말하는데.) 어쨌든. 도시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이 읽어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친숙한 동물이야기가 많아서 (특히, 그와 함께 지냈던 두 마리의 개와 곰이나 메기 같은 물고기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4.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이 책의 내용이 친숙하건 말건 그건 크게  중요하진 않다고 본다. <희망의 발견>은 <월든>보다 훨씬 더 자아의 성찰이 풍부하게 깃든 책이라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다. 뭐랄까 박범신의 에세이 <카일라스 가는 길>에서 기억나는 한 장면. 카일라스 정상에서 하늘과 내가 일 대 일로 마주봤던 바로 그 때. 하늘과 대화를 나누면서 박범신 작가가 느꼈을 충격.

 

시베리아의 한적한 오두막에서 자연과 마주 앉은 은둔자의 처지에서 느낀 고독함 속에서의 내면을 <희망의 발견>에서는 아주 본격적으로. "내가 7년 전에 여기서 충격 받았거든? 그러니까 이번에 한번 두고 봐. 내가 그걸 글로 싹 옮겨버릴 테니." 라고 선포하듯이. 제대로 쓰기 위해서 그런 감성에 어울리는 책 보따리와 6개월치 식량을 바리바리 싸들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귀중한 하루하루의 순간동안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들을 잠언처럼 표현한다. 

 

이런 잠언을 아포리즘이라고 하는데. 아포리즘의 향연을 제대로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 만한 책이 바로 <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였다. 그리고 원서의 아포리즘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한글로 어떻게 옮기느냐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번역가 임호경 선생님의 한글번역도 기가 막히게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그 시적인 언어가 난무하는... 문장들. 따로 한 번 쫙 정리해야겠다. 물론 갠소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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