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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가 보낸 편지 -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수상작
윤해환 지음 / 노블마인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1. 우연히 서울신문의 2013 신춘문예 당선작. 평론 <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들>을 읽었다. 소설의 이야기의 끝과 무한에 대하여 논하는 작품이었던 것 같았다. 이 평론의 끝과 무한의 논의는 각각으로 나뉘는 양방향의 진화론으로 이해해야 옳을 것이다. 거기에 패스티시를 이용한 소설 기법이 등장한다.
<홈즈>337p. 패스티시가 무엇이냐. 작가들이 하나의 작품, 작가를 존경하여 작가의 작품 등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자신의 스타일로 재창조하는 작업이다.
끝과 무한의 이분법. 소설가라는 직군을 포화상태에 이른 이야기를 짜깁기하는 단순 기술자로 격하시키느냐, 아니면 전문성을 지닌 또 다른 창조자로 격상하느냐의 문제인데. 이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견해는 원래부터 후자에 가까웠고, 윤해환의 <홈즈가 보낸 편지>를 읽고 나서도 나는 당연히 후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바이다.신기하게 올해의 평론 당선작과 일치하는 바가 있길래 겸사겸사 감상을 남겨봤다.
그러므로 <홈즈가 보낸 편지>는 아서 코난 도일, 김내성, 모리스 르블랑의 작품을 패스티시 한 훌륭한 미스터리 소설로 분류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자 무한의 결론이고, 최제훈 작가가 선택한 방식이다. 트릭에 대한 아이디어의 차용이나 기존 작품에서 사용된 구성을 변주는 작가가 손수 마련한 편협한 주석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알 길이 없을 정도로 감쪽같았고, 이야기의 흐름과 잘 맞아떨어졌다.
패스티시 결과로 고전스러운 분위기를 과도하게 풍겼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그런데 이것조차도 고전 소설을 즐겨 읽고, 고전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 탓에 단점이 되지는 않았다.
2. 며칠 전에 읽은 오르한 파묵의 소설가론을 기준으로 <홈즈>의 작가를 얘기해보자.파묵은 소박과 성찰로서 소설가와 독자를 분류했는데, 이것을 위 평론의 끝과 무한의 문제. 기술자와 전문가에 대입시켜본다면, 전자의 소설가는 내면의 서사와 묘사를 사용하여 메타픽션을 구사하는 소박한 작가로 인식되고, 후자의 소설가는 가공할 수 있는 이야기와 소재를 이용하여 플롯을 창조하는 성찰적인 작가로 인식된다.
따라서 윤해환 작가는 <홈즈>가 가진 특성으로 봤을 때, 소박한 작가라기보다는 성찰적인 작가에 가깝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런데 파묵의 소설론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소박과 성찰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무엇이 있는가? 쉽게 말해서 해당 소설을 읽고 인문학적 성찰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홈즈가 보낸 편지>는 장르 문학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단했던 기우를 극복해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홈즈가 보낸 편지>는 미스터리 특유의 범인을 추리해나가는 스릴감은 물론. 인간의 죄에 대한 성찰까지 곁들인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추리소설가 김내성의 공백기를 파고들어 독자들에게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가?, 개인이 처한 불가항력의 고통으로 벌어진 행위를 무조건 비난할 수 있을까?, 용서와 단죄. 양쪽 모두 수긍이 가능한 이 상황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가? 에 대하여 아주 모범적인 해답을 제시했기 때문에 좋은 장르소설이라는 결론을 내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