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說 냉귀지 - 개정판
최병현 지음 / 지와사랑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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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설 냉귀지시설이라는 빨간 글자에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풍긴다시와 소설의 경계를 딱히 정해두지 않은 문장으로 이루어졌단 소리다그래서 서정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서사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하며극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하다이 모든 부분이 혼합되어 <냉귀지>를 이룬다.

 

그런가 하면 제비가 사는 사회를 그려내어 군부독재에 대한 풍자를 위한 소재로 사용하고역사적 사건을 의인화하여 만든 인물의 내면을 다룬 심층적인 문학으로도 읽을 수도 있는데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일구의 내면을 다룬 작품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인 듯싶다.

 

2. 사일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1960년에 일어난 사일구 혁명이다그와 동시에 아버지 삼일(삼일만세운동)과 새어머니 현실(1980년대 민주화시대)의 아들이며오일육(오일육 군사쿠데타)의 배다른 형이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섞일 수도, 어울릴 것도 같지 않은 가족의 가치관의 충돌로서 대한민국의 갈등을 말한다.

 

삼일은 가슴은 뜨겁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이미 흘러가 버린 사람이며, 현실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사람이며, 오일육은 자신의 칼날을 통해 민족의 영달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물이며, 사일구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노래를 부르짖는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3. <냉귀지>는 1960년 사일구가 태어난 이래로 다시 찾아온 1980년대의 어느 하루. 사일구의 생일. 민주화 의식이 가장 활성화 된 하루의 시간동안 옮긴 사일구의 걸음걸이를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사일구가 마치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와 지옥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그렇게 지옥 같은 대한민국의 실상을 관찰하고 내면의 언어를 통해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4. 오일육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진 사회 풍경은 오일육의 철학(독재반공성장)이 온 나라를 뒤덮었던 사회였고유신정권이 스러지고 난 이후에도 그 자리를 노리던 전두환은 다시금 오일육의 야망으로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러한 때, 최병현 작가는 <냉귀지>를 통해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는 젊은이들에게 사일구의 정신을 불어넣는다그 정신의 이름이 바로 <냉귀지>이며 그 뜻은 다음과 같다.

 

342p. 준엄한 법과 같은 차가움과 귀신의 음성과 같은 진지함과 삶을 채찍질하는 얼음처럼 굳은 의지가 성삼위일체를 이룬 육신적인 말.

 

5. <냉귀지>는 칼날을 휘두르는 그들과 같은 방식(칼날. 즉, 유혈투쟁)으로 맞서지 않기를 기도한다.사랑을 통한 혁명을 이뤄내기를 소망한다밥그릇을 두고 싸우다 차가운 길바닥에 밥알이 쏟아지게 하지 않고그 양식이 온전히 우리의 입으로 흘러들어올 수 있는 혁명을 권한다.

 

다소 이상적인 모습도 엿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차가움과 진지함과 굳은 의지로 그 언어(고사성어, 유행가 가사, 역사적 사건)로 이루어진 시설의 형태로 토해낸다는 것이다그래서 냉귀지다.

 

6. <냉귀지>를 덮으면서 강만희의 말은 오일육의 언어임을 깨닫고, 윤여준의 말은 사일구의 언어임을 다시 한번 선명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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