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코츠키의 경우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7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이수연.이득재 옮김 / 들녘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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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경리 문학상은 2011년에 처음 제정되었다박경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이 상은 한국의 노벨상이라는 위상을 다지기 위해 2012올해부터 국내작가뿐 아니라 세계의 작가들까지 범위를 넓혀 상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한다그리고 러시아의 류드밀라 울리츠카야가 첫 번째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 전에 읽었던 다른 문학상 작품과는 달리 이 책은 인상적이었다혈연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전쟁 이후에 원래의 가족들과 흩어졌던 그들이 인연을 맺는다.) 본능적이면서도 사랑과 의무를 바탕으로 가정을 이룬 파벨엘레나바실리사타냐토마줴냐가 함께 쿠코츠키 일가를 이루어나가며 각각의 시점이 치우치거나 희생되지 않고 온전히 표현된다.

 

그와 동시에 쿠코츠키 가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교류하는 주위 인물의 시점까지도 <쿠코츠키의 경우>는 등한시하지 않았다. (사랑하기를 원했지만, 타냐의 팜므파탈에 의해 그러지 못했던 쌍둥이 친구들은 제외하고…….) 책장을 덮고 나서 쿠코츠키와 함께한 다양한 인물들이 스스로 페이지를 열어젖히고 걸어나오는 듯한 신기루를 느낄 정도로 상당히 세밀하게 짜여있다.

 

3. 특히기억상실로 고생했던 엄마 엘레나의 몫을 1부의 짧은 글에서 부족했었는지.총 4부로 나뉘 부분 가운데 2부 전체에 할당한다2부만큼은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서사적 흐름에 반하여 서술된다추상적인 것을 모두 글로서. 가시적인 무엇으로서 표현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가진 엘레나의 성격에서 나올법한 묘사의식의 기법을 사용하여 꿈을 그려내는 수법을 이렇게 사용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이 장면을 막상 처음 읽을 때는 이질감도 있었지만끝까지 읽어보면 그것이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아버지어머니손녀를 중심으로 하는 4부작의 구성에서 어머니라는 틀을 이루기 때문이다이 부분이야말로 다른 작품과의 차별성을 부여하려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4. 그런가하면 딸타냐가 중심을 이루는 장면에서는 한 편의 히피 문학을 읽는 느낌을 받았다나로서는 제임스 조이스 이후에 또다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추구하려는 영혼과 함께해서 즐거웠다.

 

손녀줴냐의 부분에서는 뭐랄까정반합을 이룬다고 할까마치 수학공식처럼 <쿠코츠키의 경우>가 줴냐로 증명되는 것 같았다제 각각의 개성을 가진 쿠코츠키의 가문 사람들이 낳은 딸이 너무나도 훌륭하게 자라줘서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이런 다양한 개성들이 활개를 펴고 다닐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준 의사이자 아버지 파벨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자신의 능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계시적인 메시지 때문에 시작하긴 했지만, 딸을 대하고 손녀를 대할 때 느꼈던 감정은 진실로 묻어났다.

 

5. 이외에도 <쿠코츠키의 경우>는 내게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던져주었다. 과거에 읽었던 어떤 책에 따르면 늑대와 개가 같은 종이었던 것처럼 가축의 조상은 원래 야생동물의 습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인간에 의하여 오랜 세월 동안 가축에 어울리는 유전적성향을 강제적으로 선택당하여 지금의 종에 이르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쿠코츠키의 경우>에서 골드베르그의 견해에 다소 국한되긴 했지만, 이 비유가 인간에게도 적용된다스탈린의 독재로부터 형성된 통제적인 사회에 의하여 옳은 소리를 내는 훌륭한 인재들이 희생되었고, 마침내 남아있는 사람들은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성향의 사람만 남게 된다.

 

권력의 입맛에 맞게 잘 거세된 유전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진 불완전한 인간으로 하여금 대를 잇게 만든다면 결국 인간의 전체적인 능력이 쇠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섞인 견해과연 이러한 것이 적용 가능한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이런 가능성은 쿠코츠키의 가문 타냐와 제냐가 잘 자라주는 사례로서 반박당하긴 하지만 정치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막연히 빨갱이로 몰아가는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비춰봤을 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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