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인님, 나의 주인님 - 총천연색 이야기의 아릿한 맛
전아리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11월
평점 :
1. 앞으로 책을 읽을 때는 표지도 유심히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아니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총천연색 이야기의 아릿한 맛’이라는 문구와 ‘총천연색’의 그것을 흡사 도넛같이 말아 접은 동그란 원에 담긴 속뜻이 이 책에 수록된 모든 작품을 읽고 나서야 선명하게 뇌리에 박힌다.
어쩌면 이것은 작가가 유도한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차례 순이 아닌 초기작부터 접근하려 했던 의도 덕분에 처음으로 마주한 <거울속으로>를 일독했을 때도. 대체 이게 뭐지? 그랬는데, 페이지를 되짚어서 살펴보니 모호한 화자가 정리되고. 혼란스럽기 그지없던 문장도 간결해졌다. 사실은 원래 간결한 문장이었는데도 말이다. 제목처럼. 표지의 그림처럼.
‘나’가 사는 공간과 ‘나’가 바라보는 시선이 닿은 그곳. 레게머리를 한 채 담배를 피우며 당신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에 희열을 느끼는 관음적인 '나'가 총천연색 중의 어떤 한가지 색깔로 다가온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갑자기 다른 시점에서 툭 튀어나온 그런 느낌이랄까. 사실은 원래 튀어나와 있었는데 말이다.
2. <주인님, 나의 주인님>에는 총 8편의 단편이 있는데 <주인님, 나의 주인님>이라는 제목을 가진 단편이 없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다만, 독자의 입장에서 제목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이란 태생적으로 불평등한 위치에서 시작할 사람들의 삶일 것이다. 태어나면서 주인님이 되고 노예가 되고……. 주인의 삶과 노예의 삶으로 나뉘고…….
그러나 이 단편의 관계를 단순히 주종관계라고 부르기엔 떨떠름하게 느껴지는 요소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전아리라는 작가는 우리들에게 서사를 중요시하여 소설을 쓰려 한다는 인터뷰를 전하지만 그렇다고 줄거리만을 이어나가는데 만족하는. 즉, 풍경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설명하고 묘사하는데 그치는 작가도 아니었다.
3. <주인님, 나의 주인님>의 여러 단편에서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그려진다. 쉽게 말해서 권력을 가진 피의자가 피해자를 대하는 모습들이 주를 이룬다. 작가는 이것들의 주제를 폭력이라고 정했다고 한다.
폭력이라고 규정지은 대치 상황에서 피해자의 위치에 서 있는 다양한 자들은 다양한 만큼이나 다양한 선택을 한다. 이 상황에 순응하거나 아니면 또 꿍꿍이를 가지는 모든 장면에서 숨은 뜻을 풍기거나 반전을 일으켜 그 상황을 역전시키거나.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만나서 0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를 떨떠름하게 만드는 이유다.
4.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의 오류. 그 오류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작품이 전아리의 <주인님. 나의 주인님>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