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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 김말봉 애정소설
김말봉 지음 / 지와사랑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1. 책등에 새겨진 ‘김말봉 애정소설’을 보면서 까닭 모를 낯섦을 느꼈다. 딱딱함을 느꼈다. 그냥 애정소설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었던 것 같다.
낯섦의 정도만큼 낯선 장르라고 생각했다. 기대치가 높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야기의 흥미보다는 강점기 시대. 여류소설가의 대중소설이라는 타이틀. 즉, 우리의 고전을 읽기 위해 선택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찔레꽃>은 요즘 흔히 로맨스라고 불리는 장르의 소설이었다. 바보같이 불필요한 겁을 먹었던 것이다.
헌데 한국의 로맨스 <찔레꽃>은 요즘의 것과 뭔가 달랐다. 느낀 대로 말하자면 섬세하고, 조심스러웠다. 감정은 즉흥적이나, 드러나는 행동은 즉흥적이지 않았다. 꾹꾹 누른 후에 표출된다. 이 때문에 인물은 평면적이고, 사건은 지지부진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고뇌를 음미하는 여유가 있고, 점진적인 느림이 사실적으로 다가와서 좋았다.
2. <찔레꽃>에서는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섣불리 지배하려 들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욕망은 충만하나 남의 눈을 의식하는 사회적·관습적 제약이 큰 영향을 미치는데, 관습에 묶여있는 인물들의 고민에서 유교 특유의 정서를 발견했다. 또한 관습이 지배하는 사회의 울타리에서 근대화된 신여성의 기운과 진보적인 청춘들의 모습도 엿보였다.
3. 유교문화에 내재된 인·의·예·지·신의 이타적인 장점들은 돈으로 부릴 수 있는 것이 많아짐에 따라서 원래의 의미가 퇴색하고, 오랫동안 소중히 지켜왔던 것들. 대표적으로 사랑과 결혼의 조건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는데, 1930년대 한반도의 풍경 또한 지금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분명히 과거에는 신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신분 상승의 욕구가 더한 조건이었다. 그렇지만 돈과 신분은 권력을 만들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1930년보다 더 오래된 과거의 권력. 즉, 신분의 차이를 소재로 삼은 이야기의 결말은 분명히 <찔레꽃>의 결말과 같을 것이다.
다만, <찔레꽃>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1930년대의 시대 배경이고, 이 작품의 뼈대가 되는 금권에 한정시켜 볼 때. 즉, 돈이 권력인 세상일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고. 권력을 탐하던 자들이 벌인 비극이 <찔레꽃>의 슬픈 모습이라는 것이다.
4. 오늘의 예술 작품은 탐욕을 드러내는 부분에서 선함보다는 악함에 훨씬 더 많은 초점을 할애한다. 권력에 훨씬 더 쉽게 유혹당한다. 그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선함의 의미를 찾거나 아니면 악이 파멸하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다. 어떤 작품은 악이 승리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찔레꽃>은 선과 악의 대립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권선징악의 절묘한 결말로 계몽적인 메시지를 각인시켜주는 점이 고전다운 특징이었다. 너무 찌들어서 그런가 이것이 신선했다. 이것은 제인 오스틴의 그것과도 유사하고, 셰익스피어나 괴테의 희곡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자연스럽게 이들의 작품이 연상될 정도로 <찔레꽃>은 기대 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