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의 땅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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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형의 땅>은 조정래 작가의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엮은 아홉 권의 전집 중에서 일곱 번째 책이다.(저번에 읽은 외면하는 벽은 여섯 번째 작품집.) <외면하는 벽>을 읽을 때는 작가연보를 유심히 살피지 않았었는데 <유형의 벽>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 작품들이 대하소설 3부작보다 먼저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보를 살핀 이유는 단순하다그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이 책을 읽으면서 필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만약그의 전집을 다 읽는다면 전쟁 이후 현대 사회로 진입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읽는 것일 테다그렇다면 그의 작품은 문학으로서 하나의 세계를 그려내고자 했던 발자크의 정신에 닿아 있다고 말해도 되겠다.

 

2. 발자크를 언급한 것은 발자크의 문학처럼 조정래의 초기문학도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쓴 <허수아비 춤>에 그려진 기득권에 대한 풍자나 이 사회에 대한 개인적인 바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대의 모습알맹이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감이 신문기사의 그것 같은 질감은 아니었다. 풍부한 묘사로 옮겨진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나의 감탄사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런 느낌은공선옥의 <유랑가족>에서도 찾을 수 있고, 김승옥의 <무진기행> 속. 단편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3. 이미 <외면하는 벽>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서양의 고전과 비교를 했었다그리고 이 책의 <길이 다른 강>을 읽으면서도 <파리대왕>이 떠올랐다. 비판하고자 하는 부분이<파리대왕>이 인간의 선천적인 악을 파헤치는 것이라면조정래의 <길이 다른 강>은태어날 때부터 평등하지 않은 인간. 즉, 부유한 가문과 소작인들 간의 불평등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성인들의 축소판인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사회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파리대왕>이 생각났다.

 

그 외에도 성과주의와 접대문화가 결합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은 사춘기 청소년 같은 한국 남성에 대한 비판 <사약>.

 

부동산으로 한 몫 잡으려 섣불리 덤볐다가 풍비박산이 나는 가정을 그린 <장님 외줄타기>.

 

서울 상경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고 아들들에게 고향을 보여주려 했으나 급속하게 변해버린 고향 풍경과 마주하게 되는 <자연공부>.

 

기업의 후계자 다툼과 그 아래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람들을 관찰 <껍질의 삶>.

 

접대와 로비에 얼룩진 위선적이고 권위적인 예술계에 대한 비판을 실은 <모래탑>.

 

4. 앞의 단편들과는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던 중편 <사랑의 벼랑>은 자신들의 의지로 삶을 선택했고,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부부의 삶이 정말 잘 풀렸으면 좋겠는데, 조정래 작가의 그림자에서 보란 듯이 벗어나 줬으면 했는데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함으로써.비극의 책임이 딸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았던 시댁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반대를 야기했던 천민자본주의로 옮겨지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조정래 작가가 장편으로 쓰고 싶었지만 여러 제약 때문에 중편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 <유형의 땅>은 한국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양반과 상놈이라는 신분사회와 돼지 같은 자들의 지배 속에 놀아나는 공산주의가 결합하여 빚어진 참극이었다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 개인은 이리저리 휩쓸리고 떠돌다가 자기 자식도 지키지 못하고그렇게 허망하게 생을 마감했다.

 

5. <외면하는 벽>과 <유형의 땅>을 통해서 조정래라는 작가는 우리 사회의 빛과 그림자 가운데 유난히도 그림자에 천착하는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래서 때로는이러한 사실과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지만, 우리가 이성을 만날 때그 사람의 밑바닥부터 알아야만 그를 제대로 안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그림자 역시 똑바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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