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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데츠키 행진곡 ㅣ 창비세계문학 5
요제프 로트 지음, 황종민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평점 :
1. 할아버지의 가치관. 아버지의 가치관. 그리고 아들의 가치관. 한 핏줄임에도 그들이 가진 옳고 그름에 관한 기준은 달랐다. 일개 보병 소위로서 황제를 구한 공을 인정받아 트로타 가문을 일으킨 할아버지는 제국에 충성하며, 제국이 있어야만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어울릴 것으로 생각진 않았지만 결국에는 할아버지가 원했던 삶을 택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삶에서 굴곡 없이 평탄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제국이라는 울타리가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들 또한 아버지가 생각하는 바대로 키우고 싶어했다. 제국에 충성하는 우수한 장교가 되어주길 바랬다.
그러나 그들 이대가 지켜냈던 제국의 신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약화되었고, 여러 민족이 각자의 민족정신을 고취하며 분리 독립을 위해 투쟁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에서 할아버지처럼 영웅이 되고 싶어했던 아들은 자신의 적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장교로 생활하면서 부조리한 면들만 발견했고. 수도와 변방의 큰 괴리감을 경험하면서 할아버지처럼 살기를 포기하고 제국 보다는 나의 삶을 위하고 싶어했다.
<라데츠키 행진곡>의 트로타 가문은 이미 제국과 깊히 연관되어 있었고, 제국의 힘에 따라 함께 쇠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기 때문에 트로타 소위는 무엇에 홀린 것 마냥 전투에 떠밀리다시피 참가했다가 제국과 같은 형태의 비극으로 삶을 끝마친다.
2. 창비에서 새로 펴낸 세계문학의 첫 열 권 중에 생소한 작가의 작품. 게다가 초역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길래 분명히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내려갔다. <라데츠키 행진곡>을 읽고 난 뒤. 나는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과 이 시대가 너무나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이 비극을 바라보면서 지금껏 시대를 이끌어왔던 시대정신의 종말에 맞서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3. 성장중심의 경제 정책을 뜻하는 신자유주의.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쉽게 말해서 부유한 나라를 꿈꿔왔던 대한민국. 나라의 경제 정책에 부응하여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은 자본주의에 맹목적인 믿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런 믿음으로서 우리의 아버지들은 삶을 이끌어왔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에게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삶을 살라고 가르쳤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현재. 나라부채는 3천조에 육박하고, 우리가 보유한 자산들은 갈수록 위험해지고, 경제 성장은 바닥을 보이고, 정치인들은 부패한 행태를 답습함으로써 신자유주의의 병폐가 차츰차츰 양파껍질처럼 벗겨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불황의 그늘 속에서 몸을 떨면서 우리는 개인의 가치와 삶의 행복이 어쩌면 돈이라는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고, 그런 의식이 자라나는 사회로 넘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세상이었는데 <라데츠키 행진곡>을 통해서 이 시대에도 과거와 똑같은 모양을 가진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깨고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나는 트로타 소위와 같은 미성숙한 모양을 지닌 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