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들
필립 지앙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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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를 뛰어넘어누군가를 변화시키거나 감동을 전하는 글을 쓰는 것그렇지 않으면 <나쁜 것들>처럼 인간의 밑바닥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글을 쓰는 것참으로 어렵다.

 

<나쁜 것들>은 이러한 밑바닥을 드러내기 위해 소설가의 환상조차도 무너뜨리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모든 영역에 대해서 글을 쓰는 사람그들은 바로 소설가다그렇지만 그 글 속에 녹아있는 자전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나쁜 것들>에는 이러한 자전적 경험에 자기 파괴적인 영감들이 가득하다.

 

2. 왕년에 알아주던 소설을 쓰던 작가에서 글 한 줄조차 제대로 쓸 수 없게 된 예순의 소설가의 이야기를 다룬 <나쁜 것들>. 답답함을 토로하는 분위기에 젖어서 그랬을까이 책에 대한 감상을 지웠다가 썼다를 반복 하고 있다이런 행위에 지쳐 초조함이 슬며시 밀려오긴 하지만 그것조차 정반합과 유사한 행위로 받아들일 수 있을법한데…….

 

3. 새로 얻은 부유한 마누라연예인으로 성공한 딸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리고 주위의 시선에 떳떳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일단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그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했던 것을 해야만 하는 소설가로서의 숙명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써야만 했다소설가로서 회복되지 못할 불안감과 그 불안감으로부터 파생되는 의심을 품에 안은 채 이야기는 흘러갔다그리고 소설 속의 그도 써내려갔다겉과 속의 두 작가가 동시에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4. 그렇지만 <나쁜 것들>에서 드러나는 주인공의 불안과 의심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지난날 한순간의 실수로 최악의 결과를 낳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그는 과거를 덮기 위해외로움을 극복하고 안식을 위해 마련한 새로운 환경은 또다시 그를 옥죄려고 하는 장면만 볼 수 있었다

 

5. 어쩌면 인과응보라는 말을 이 소설에 빗댈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보면 그는 불행한 인간이다인생 최악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이 다름 아닌 그의 딸이었으니 말이다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싫은 기억을 공유하거나 기억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멀리 떼어놓아야 잊을 수 있을 텐데 이토록 가까운 사람이니.

 

그 기억을 공유한 딸의 입장에서도 어긋난 삶에 대한 책임을 돌릴 곳이 단 한 군데 밖에 없기에 가슴이 아플 수밖에…….그런 딸을 아내로 맞은 사위도……. 그런 사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딸도…….

 

그리고 과거의 잘나갔던 소설가의 이미지만을 간직한 채새로운 삶을 위해 찾아든 새 부인의 입장에서도 여전히 잘못된 과거 속에 갇혀있는 그의 모습그녀와의 아이를 거부하는 그를 이해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나쁜 것은 나쁜 것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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