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의 정원 - 히틀러와의 1년, 그 황홀하고도 고통스런 기억
에릭 라슨 지음, 원은주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1.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직전의 조선.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의 에도 막부를 방문했던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 사이의 어긋난 진술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조선 정쟁의 폐해를 이야기할 때 대표적인 다루는 이 두 사람의 엇갈린 진술. 어쩌면 그 당시 막부를 방문했던 통신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준비하려는 흔적을 정말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방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조에게 끈질기게 요청해서 성사된 방문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방문은 조선을 기습하기 위한 위장을 위해 쳐놓은 덫이라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 <야수의 정원>에서 초기 히틀러의 세력이 만들어낸 수상한 베를린의 모습처럼 말이다.

 

<야수의 정원>에서 히틀러는 숨겨놓은 탐욕을 감출 수 없었지만, 혹시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신사들의 눈을 가리는데 성공했다면, 방문 당시에 느낀 기시감을 토대로 전쟁 위험을 탐지한 인물의 능력이 훌륭한 까닭이었을 것이다.

 

2. 과거 유럽의 귀족 사회는 끊이지 않고 열리는 연회와 파티의 참여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장면의 서사는 발자크나 제인 오스틴 외에 많은 작가의 소설에서 그려진다. 그들은 파티에 참여하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사회에 진출했다. 더 나아가 정치에 참여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귀족 사회의 잔재는 지금도 만연해있다. 오늘날의 밀실 정치가 소수의 몇몇이 모든 권력을 쥐락펴락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런데 국민이 정치에서 완벽히 제외된 이러한 밀실 정치는 참여 가능했던 리스트에 올라있는 소수인원 몇몇의 숙청으로 쿠데타가 가능한 허약한 국가 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음<야수의 정원>에서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토록 쉽게 숙청이 발생하는 것은 그 과정만 거치면 바로 권력을 사유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쿠데타가 일어나는 현상은 밀실 정치의 결과로 생각할 수 있다. 국민이 현실정치에 참여하려는 의지가 있고, 그 의지를 정치인들에게 보여만 줄 수 있다면. 쿠데타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고, 밀실 안에서 만들어낸 여러 법안들은 쓰레기통으로 향할 것이다.

 

3. 조지 오웰이 창조한 돼지 나폴레옹은 스탈린을 해석해놓은 존재다. 나폴레옹이 장악한 농장에서 소리 소문도 없이 법령이 바꿔치기 당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스탈린의 만행 이전에 독일에서 발생한 히틀러의 만행 역시 나폴레옹과 똑같은 모습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치와 히틀러도 돼지 나폴레옹의 또 다른 얼굴이다. 다시금 <동물농장>의 해석은 극우·극좌를 경계하라. 에서 인간을 경계하라.로 바뀌는 순간이다.

 

4. <야수의 정원>의 마사가 그래서 참 안타깝다. 그녀는 아마도 어떤 기대감을 안고 미국에서 독일. 독일에서 소련. 그리고 체코까지 발걸음을 내디뎠을 것이다. 그런 기대와는 달리 그녀가 목격한 것은 어느 무엇 하나 나을 것도 없는 혼돈의 구렁텅이. 그 한가운데였다. 그녀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만 한평생 쳐다보며 살다가 마침내 생을 마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