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동물원 - 강태식

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1. 한국 사회? 한국인 소설가가 대한민국 서울을 다루는 이야기이므로 이것을 한국이라는 공간으로 한정시켜 생각해 볼 수 있겠으나. <굿바이 동물원>의 낙오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승자독식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치열한 경쟁. 이 싸움에서 패배한 영수는 인간이라는 존재로 더는 돈벌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동물이 되었다. 정확히는 동물원의 고릴라가 되었다.

동물원의 고릴라가 되는 것도 그리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마늘 까기나 인형 눈알 붙이기부터 종이학 공룡알 접기, 봉투 붙이기와 같은 부업들을 차근차근 완수하고 나서야 ‘돼지엄마’에게 동물원에서 일해보지 않을래?라고 추천받는다.그리고 그곳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서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해야 했다. 영수는 또 한 번의 경쟁으로 그 자리를 차지한다.

<굿바이 동물원>은 현대의 부산물인 극도로 심화된 경쟁을 비난하고, 경쟁 사회의 그림자를 다중삼인칭의 방식으로서 부각하는데는 성공하지만. 경쟁이라는 장치는 필연임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동물원에서의 생활 그 후의 대처방식에 따라서 여러 갈래의 진로가 속속 공개되지만 모든 것이 경쟁으로부터 시작한다.

2. 회사가 그들에게 원한 것은 고릴라 우리에서 고릴라 옷을 입고 고릴라처럼 생활하는 것이다. 진짜 고릴라가 아닌 미디어에 노출된. 쉽게 말해서 영화<킹콩>의 행동을 따라하는 고릴라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고릴라가 되고도 고릴라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고릴라를 보러 동물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희생한다.

그나마 위안 삼을 거리는 마늘을 까면서 흐르는 눈물에 자기 신세를 한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슬픔을 위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인형의 눈을 붙이는 데 사용해야 할 본드를 삶의 회피를 위해 미친 듯이 빨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물원에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기 위한. 누군가를 쳐내고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동료가 아니라 같은 일을 함께하며 아픔을 공유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 이것이 인간이 동물 행세를 해야 하는 일은 굴욕적이지만 인간 사회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덜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이러한 비틀기를 통해 저자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추락해버렸는지를 풍자한다.

3. 마치 카프카의 <변신>처럼, 인간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인 고릴라가 되어 삶을 연명하는 기상천외한 과정은 영수뿐만 아니라 고릴라 우리에서 만났던 동료. 만딩고, 조풍년, 앤 역시 함께 겪는 사항이다. 이러한 공통점을 들여다보면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모두가 돼지엄마에게 추천을 받아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동료들이 돼지엄마가 이곳을 추천해줬다고 말하며 돼지엄마를 혹시 아느냐고 물었을 때, 영수는 돼지엄마라는 사람을 모른다고 답했다는 사실.

돼지엄마를 안다는 것은 영수 또한 그들이 겪었던 과정을 겪었음을 의미하고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일 테고, 그렇다면 돼지엄마를 모른다고 말한 것은 "그래도 나는 당신보다는 좀 더 낫다?" 아니면 "나의 인생은 다르다"와 같은 어떤 거리두기의 방식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거리두기는 고백의 순간 준비하지 못한 우연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이라 “모른다”라는 말에서 온전하지 않은 상황. 주인공의 의식 세계가 아직도 혼란스럽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장치로 해석할 수 있다. 나 역시 인간이라서 이 '모른다'에 내포된 의미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된다.

어쨌든 영수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거리두기는 역설적으로 그 이후에 나타나는 만딩고의 작별, 조풍년의 작별, 앤의 작별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영수는 그들과 다른 부류라고 변명했었지만, 만딩고, 조풍년, 앤의 성공적인 홀로서기를 하나 둘 바라보며 돼지엄마를 안다고 말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는 순간 발전이 시작된다는 맥락으로 생각해 봤을 때, 동료들은 자신의 허물을 인정했고 그러므로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통은 이제 영수에게 넘어왔음을 알리는 작은 선물을 안겨주며 소설은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