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엘리엇 부 지음 / 지식노마드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책에 있는 인상 깊은 구절을 모조리 엑셀에 저장시켜 놓으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토익이나 기타 자격증 시험에 출제하기 위해 만든 문제 은행처럼 책 속의 구절을 한 공간에 모아두고필요한 키워드를 검색하면 나중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엘리엇 부의 <자살을 할까커피를 한 잔 할까?>는 내가 했었던 생각을 구현해놓은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책의 제목 <자살을...>마저 카뮈의 시지프 신화 언저리에서 옮겨온 글귀라고 한다그리고 카뮈의 물음에 저자 엘리엇 부는 그 커피숍이 어딘지 알려주삼이라는 시크한 대답을 곁들인다.

 

이 책을 <가장 인간적인 인간>의 관점에 따라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면 이 책은 가장 인간적인 컴퓨터와 인간적인 인간이 공존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가장 인간적인 컴퓨터의 예는 돈,예술정치불안을 카테고리로 에세이 형식으로 묶은 대략 한 두 페이지 분량의 글에서 드러난다.

 

236. 예술이 우리 삶의 형태를 만든다우리가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0

 

상상은 다른 사람은 못 보는 것을 보는 기술이다.1 그림은 손이 아니라 머리로 그린다.2  나는 그림을 꿈꾸고 그 그림으로 표현한다.3  이 세상은 우리의 상상을 표현하는 캔버스일 뿐이다.4 예술의 목표는 사물의 외면이 아니라 내면의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다.5 규칙과 모범이 천재를 죽이고 예술을 망친다.6 자유가 없으면 예술도 없다예술은 스스로 가한 구속만 견딜 수 있을 뿐 다른 구속을 받는 순간 생명을 잃는다.7

 

이처럼 제목부터 글의 내용 전체를 이루고 있는 글들은 모두 유명인들의 책에서 옮겨온 말들인데,읽어보면 어째 절묘하게 맞아 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이는 <가장 인간적인 인간>에서 인간과 컴퓨터가 채팅을 하던 때, 해당 일의 정치 이슈를 세밀하게 공부하고 온 컴퓨터가 내뱉는 정치인에 관한 깊이 있는 의견에 인간이 농락당하는 장면과 유사하다.

 

이 글을 잘 들여다보면 예술그림상상 같은 단어가 각 단락 속에 빠지지 않고포함되어 있다이를 토대로 유추해보자면이 글은 저자가 모아놓은 커다란 데이터베이스 속에서 예술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 나타나는 검은 것은 글자요흰 것은 종이인의미가 없는 이미지일 수도 있다.

 

만약내 생각과는 다르게 아포리즘을 고르고 골라서 이 문장을 실었다 치더라도방대한 데이터베이스 속 출력된 문장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왜냐하면문장을 잘라내는 것은 문장의 자연스러운 이어짐을 막아서고. 문장에서 드러나야 할 생각의 전개과정이 사라져버린. 즉 주제만 계속 반복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시도는 좋았지만저 문장을 읽다 보면 순식간에 문장이 모래알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반면에, 이 책에서 인간적인 인간의 모습을 띠는 이중적인 부분이 유명인과 저자 간에 벌어지는 경구에 대한 경구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과거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엉켜있는 이 부분을 관전자의 입장에서 흥미롭게 지켜봤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 할 수 있는 대화였다고 생각한다앞에서도 말했지만자살을 할까커피 한잔을 할까?” 라는 물음에 커피숍을 알려달라는 말. “정치의 마지막 행보는 총이라는 구절에 대해서 방탄심장은 필수겠구만!” 이라고 내뱉는 말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다.

 

세상은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에 대응하여 세상다섯 살짜리 우리 딸도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라는 푸념섞인 목소리 또한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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