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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평점 :
1. 돌아가신 그녀의 어머니를 떠나 보내는 날. “그런 상태로 삶을 유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로 의미 따위를 운운하는 것은 그녀가 살아있었던 과거에도 의미가 미약했었고, 더욱이 지금에는 이 하루만 지나면 더는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되는 타인에게 허락된 대수롭지 않음의 표식일 뿐이다.
타인이 아닌 가족의 관계. 특히 <한 여자>에서처럼 딸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의미 없음이 결코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어머니의 존재 덕분에 그녀는 존재할 수가 있고, 인격 형성이라는 도덕관념에서도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는 존재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모가 만들어 놓은 환경 안에서 자녀가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전제가 옳다면 부모의 존재는 환경의 좋음과 나쁨에 관계없이 훨씬 더 높은 단계로 격상된다.
2.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생각을 하는 부모와 자식 간의 부닥침은 필연적인 반복이기에. 그녀와의 매 순간이 행복하게 다가오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와 종전 이후 궁핍했던 시절. 어머니는 자그마한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받는 감정노동의 스트레스를 어린 딸에게 푸는 어떤 나날도 있었겠지만, 이 다툼은 모두 자식이 바르게 되도록 바라는 부모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51. 네가 다른 애들에 비해 넉넉하지 못하다고 입에 오르내리는 건 싫어. 그녀의 가장 깊은 욕망은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것 전부를 내게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다는 것은 결국 그녀에게는 과중한 노동, 극심한 돈 걱정을 의미하는 거였다.
그러므로 다툼의 본질은 어려운 시대에 한푼 두푼 절약하고, 억척스럽게 번 돈을 딸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으로 바치는 사랑이고, 그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바로 저자의 어머니요.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리고 <남자의 자리>의 아버지 모습 또한 이 세상 모든 아버지의 모습이다.
<남자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반추했던 아니 에르노는 <한 여자>에서 어머니의 자리를 되새긴다. 자신의 삶을 만들어준 어머니라는 이름의 무게감을 잘 알고 있는 효녀 딸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깊숙하게 패인 공간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했던 예전의 시간을 추억하며 아니 에르노는 종이와 펜을 들고, 빈 곳을 가득 채우는 행위로서 그녀와 시간을 같이 한다.
그렇다고 본다면 그녀가 글을 쓰는 순간은 그녀를 선생의 길로. 작가의 길로 인도해준 그녀의 아버지, 어머니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순간일 것이다. 희생에 대한 답례의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니 에르노는 꾸준히 글로서 대화할 것이다.
101. 그녀는 개인 소지품을 하나씩 하나씩 전부 잃어버렸다. 무척 마음에 들어 했던 카디건, 예비로 갖고 있던 안경, 화장품 가방. 그녀에게는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었고, 그것이 무엇이든 더 이상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 자기 소유의 물건들을 기억하지 못했고, 더 이상 자기 jt으로 갖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