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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의 기술 1 ㅣ NFF (New Face of Fiction)
채드 하바크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레전드 아파리치오 로드리게스(물론, 가상의 인물임에 분명하다.)가 쓴 야구교본의 제목인 동시에 채트 하바크가 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수비의 기술 : The Art of Fielding>에서 수비로 번역한 Fielding은 단순히 야구수비를 뜻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채드 하바크의 Fielding은 삶의 그라운드에서 각자에게 닥쳐오는 타구를 막아야 한다는 인생의 메타포가 내포되어 있었다.
핸리 스크림섄더의 무결점 수비를 보면서 오랜만에 언더독이 이뤄내는 낭만주의의 찬가를 듣게 되나 싶었는데, 이후에 차례차례 등장하는 마이크 슈워츠, 오웬 던, 거트 어펜라이트, 펠라 어펜라이트로의 시점전환은 인물설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작가의 섬세함에 먼저 눈길이 가게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치고 아마존에서 ‘올해의 책’ 1위를 한 이 소설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예전 하루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대체 어떤 까닭일까? "하루키는 필요 없어! 미국에도 하루키 못지않은 작가가 있으니까?" 라는 미국인들의 환청이 들리는 듯도 하다.
청춘들의 방황과 사랑을 연주한 <상실의 시대>와 <수비의 기술>은 청춘을 주제로 한 다른 작가의 작품이지만, 여운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이야기를 그려가는 사이드 메뉴에서도 비슷한 점은 발견된다. 청춘을 말하기 위해서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위대한 개츠비>와 <마의 산>을 사용했다면, 채드 하바크의 <수비의 기술>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외 그의 전작들(그리고 메모해두지 못한 여러 작가)을 사용한다. 이전에도 <상실의 시대> 때문에 두 작품을 읽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수비의 기술> 때문에 허먼 멜빌의 작품을 읽어야만 할 것 같다.
한편, 두 작품에서 다른 점을 꼽아본다면 <수비의 기술>이 <상실의 시대>보다 더 다각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일 테다. 물론, 다각적이라고 해서 <기술>이 비교우위에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기본적으로 <수비의 기술>이 다섯 인물을 교차시키며 돌아가는 형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은 <수비의 기술>의 연애가 훨씬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힌트를 주자면 <상실의 시대>에서 성별이 바뀐 롤리타적 사랑이 <수비의 기술>에서도 비슷한 류의 상태로 설정되는데 이게 반전을 만들어낸다.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릴 만큼 속도감이 빠른 책은 아니라고 지금이라도 고백을 해야겠다. 이 작품은 순문학적인 색채가 아주 강하고, 문장이 상당히 세밀하고 더디게 이어지는 편이라 빨리 읽고 싶어도 빨리 읽고 싶지 않게 되는 반발심이 생겨난다. 이 기분은 아마도 웨스터시 대학교의 배경포함. 그 밖의 모든 것을 친숙하게 만들어내기 위한 사전 작업의 치밀함과 그에 맞서는 내면의 저항일 것이다.
내면의 저항이라는 것은 괴리감의 일종이다. 한국에서 <수비의 기술>의 인물과 동일시할만한 대학 캠퍼스 내의 롤 모델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절망스런 감정이다. 학원스포츠가 발달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상황. 입시지옥과 수능이라는 좁은 길 뒤에 있는 한국의 대학모습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의 절반은 난관에 봉착한 다섯 인물의 위기감을 고조시키면서 마무리된다. 목표했던 다섯 군데의 로스쿨에서 고배를 마신 마이크는 잘 나갈 헨리를 바라보며 멘붕에 빠지고, 무결점 수비를 하면서 메이저리그 상위 픽을 노리던 헨리가 실책을 연발하고, 오웬과 거트 총장의 수상한 동침은 답이 나오지 않는 답답함을 만들어내고, 마이크와 전남편 데이비스. 그리고 아버지 거트 모든 남자와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펠라의 상황도 가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