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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55
파트리크 라페르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1. 욕망은 끝이 없다. 하지만 인생은 짧다. 그러므로 인간은 짧은 시간 안에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제품을 꾸준히 개발했다. 개중에는 인간관계를 더욱 쉽게 이어주는 도구도 있다. 거리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전화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비행기와 자동차 같은 운송수단의 지속적인 성능의 향상은 먼 곳에 사는 지인과의 만남을 훨씬 더 쉽게 한다.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의 노라 네빌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 전화기에 저장된 파리와 런던에 거주하는 두 남자. 루이 블레리오. 머피 블롬데일과 자유롭게 소통한다. 비행기와 자동차를 이용하여 상반된 성향의 루이와 머피 사이를 자유롭게 왕복한다. 외로움에 처했을 때, 그녀와 그들은 욕망의 끈에 간단히 접속할 수 있고,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실제적인 만남. 그 후에 이어지는 성관계의 쾌락을 만끽하면서 삶을 연명한다. 루이와 머피. 그리고 노라에게 쾌락이 빠진 삶은 궁핍. 결핍처럼 핍(乏)이라는 뜻이 들어가는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즐긴다기보다는 연명한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마치 마약과도 같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노라와의 관계가 잠시 끊어졌던 순간은 금단현상이 일어나는 순간과도 같다.
52. 신이 만들어 낸 문제 인물들처럼 그의 방을 스쳐 지나간, 하나 같이 금발에 감상적이기 짝이 없던 보스턴 여자들, 그 모든 타락한 사랑들, 하찮은 모험들, 삶의 잔푼어치들. 그 모든 것이 노라를 만난 다음부터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득하고 가소롭게만 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두 남자의 증세보다 노라의 증세가 훨씬 더 심각하다. 두 남자는 노라라는 마약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처지고, 노라는 그녀 자체가 마약 같은 물질로 변화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루이와의 관계가 시들해질 때쯤 영국으로 건너가 머피와 관계를 한다. 노라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물질적 에너지를 흡수한다. 그녀는 둘 사이를 왕복하면서 어장관리를 하고 있었다.
어장관리의 역설. 한 남자와 만나면서 정신적·금전적·육체적 에너지를 모두 사용하고, 방전되면 다른 남자의 에너지를 갈구하는. 즉, 방전과 충전의 시기 중에 충전된 쪽만 택하는 관계. 이것은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의 유혹 그것과도 같다. 오래된 제품을 싫증 내면서 새 제품을 구매하고 또 신제품이 나오면 교체하는 행위와 유사하다.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싫증 내는 시기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지속적인 인간관계는 불가능해지고,관계에서의 싫증 역시 빨라진다. 이처럼 인류가 쌓아놓은 욕망을 위한 활동과 성과는 다시 인간에게 되돌아와 영향을 미친다.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에서 우리는 부정적인 영향의 전형을 보여주는 노라와 루이와 머피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203. 수학적 정의에 따르면 한순간은 다른 순간에 대해 어떤 특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같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거라고 하지만, 오직 그가 호흡하는 이 순간들만이 의심의 여지 없이 그를 완전히 행복하게 해 주는 유일한 순간이다.
2. 이 책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은 어느 페이지를 읽더라도 제목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비도덕적 장면인 그들의 불륜행위만을 쫓는다면 학습된 도덕관이 무의식적으로 저항하여 매우 실망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제목을 잊지 않으면서 그들이 왜 그런 이상행동을 하는지.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고, 그래서 인류의 역사가 욕망을 좀 더 쉽게 표출할 수 있도록 발전해왔음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행위의 당위성이 설명될 것이고 그 이유를 깨닫는 순간 소설의 맛은 한층 풍요로워진다. 마침내 노라에게 연민의 감정이 생긴다.
요약하자면. 파트리크 라페르의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는 욕망(편리함)의 도구를 발전시켜온 현대인에게 두드러지는, 거기다가 개인주의와 물질주의 성향이 첨가되어 더욱 부풀어 오르는 개인의 고립과 외로움이라는 부작용. 그리고 이 부작용에서 탈피하기 위해 성적인 쾌락으로 욕망을 분출해내려 하지만. 부작용의 치료법 그 자체도 부작용의 연장선임을 암시하는 성도착적이면서 제한적인 욕망의 갈구와 그 임계점을 감상적으로 나열해 놓은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