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최상의 상태에 관해서 그리고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해서
1500년대, 영국의 타락상을 이끌었던 자본주의를 향한 분노와 신교와 구교의 대립에 대한 불만과귀족의 탐욕에 둘러싸인 헨리 8세에 대한 비난을 밥그릇에 밥을 꾹꾹 누르듯이 한꺼번에 담아낸 책이 <유토피아>였다. 토머스 모어는 가상의 인물 라파엘과 가상의 도시 유토피아라는 식탁 위에<유토피아>를 내어 놓는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철학적 개념이 충만한 철학서이기 전에, 하나의 문학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아주 단순한 구조를 지닌 문학작품이다. 장르는 본격 사회민주주의 정치소설이다. <유토피아>는 오랜 세월동안 세계의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쌓은 라파엘이라는 뱃사람을 저자인
모어가 우연히 만난 후, 유토피아라는 나라에 대한 견문록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견문록을 듣기 전, 모어가 라파엘에게 사회를 위해 그의 경험을 써달라는 요청은 라파엘의 서릿발 같은 사회 비판으로서
기각된다. 모어와 라파엘의 논쟁을 통해 라파엘이 비판하고 있는 것은 기득권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관료들의
감언이설 때문에 그의 참언이 먹혀들어갈리 없음을 알리는 치료불능의 상태였다. 따라서 모어는 라파엘의 견문을 청해 듣는 정도에 그치고 있고 <유토피아>는 그것의 전부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지금의 세태의 탐욕에 대한 모든 문제의 근원이 사유재산제도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면서
사유재산제도의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화폐제도를 폐지하고, 금이나 은의 가치를 요강이나 노예의 장신구 따위로 격하시키고, 과시를 통한 개인의 허영심을 채워줄 목적으로 사용되는 명품 같은 사치재의 생산을 완전히
중단하고, 필수소비재의 생산에만 전념한다면 유토피아의 국민은 적은 노동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만끽할 수
있다고 전한다.
더 나아가, 라파엘은 바람직한 국가의 이상인 유토피아의 실상을 농업, 도시제도, 직업, 경제, 사회조직, 가족, 여행, 무역, 도덕, 배움과 쾌락, 노예제도, 죽음, 결혼, 소송과 처벌, 수교, 전쟁, 종교라는 주제로 나누어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개인보다는 공동체 사회의 행복을 위한 목적에 우선적으로 맞추어
조직되고, 인간의 탐욕을 근원에서부터 차단하려는 노력이 강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라파엘의 경험으로 만들어낸 유토피아가 현실적으로는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또는 이상향이라는 의미라는 점에서 어쩌면 모어도 유토피아의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개인적인 견해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일제 강점기 이후 많은 지식인들이 사회주의 이념에 경도되어 북한으로
건너갔지만,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던 지배층 자신들의 탐욕을 막지 못해 북한 주민을 착취대상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를 건국한 이는 인간의 탐욕이 가지고 있는 습성을 알았기 때문에 영토 주변의 모든 땅을
파헤쳐 인접한 육지와 분리시켰던 것일까? 그렇다면 진정한 유토피아를 위해서는 세속적인 관념에 젖어있는 타인의 손이 미치지 않아야 할
터인데, 그랬다가는 언젠가 강력한 무기를 보유한 열강의 침입에 굴복해야 할 것이다. 전쟁을 대비해서 많은 양의 금을 비축해두었지만 '글쎄, 막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렇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유토피아는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유토피아>에 실려있는 이상향을 위한 정신이 담긴 문장들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명문장들이다. 너무 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어놔서 한 권을 그대로 옮기는 것과 똑같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