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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 - 범우 비평판 세계 문학 61-1
크누트 함순 지음, 김남석 옮김 / 범우사 / 2006년 3월
평점 :
예술이란 굶주림의 예술, 혹은 결핍, 필연, 욕망의 예술인 것이다. 이 예술 속에서 확실함은 의심스러움으로 바뀌고 형태는 과정에 의해 밀려난다. 이제 임의적으로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런 만큼 어떤 명료성을 획득하려는 의무는 더 강해진다. 그것은 이 세상에 정답은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을 제대로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 질문을 직접 살아 본 사람만이 그것을 발견한다.
<폴 오스터의 뉴욕통신 중에서.>
굶주림의 예술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크누트 함순을 두고,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 <여자들>에서 치나스키는 “크누트 함순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였다” 고 말했다. 치나스키는 그의 의견에 동의했던 어떤 여인의 마음을 함순 덕분에 아주 쉽게 사로잡을 수 있었다.
또한, 너무나 잘 싸웠던
원로들을 기억하라 :
헤밍웨이, 셀린느, 도스토옙스키, 함순.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중에서.>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을 <여자들> 때문에 알게 되었지만, 읽게 된 동기는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위대한 작가로 생각하고 있는 작품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참고로 함순은 부코스키의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이라는 시에서 언급한 4명의 작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부코스키의 소설은 함순의 <굶주림>과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하는 점이 같았고, 세상에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남자의 고독함을 다루는 이야기이며, 어떤 경로를 거치든 간에 결국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다. 게다가 주인공의 외곬수적인 성격 역시 매우 닮아있다.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동작 속에 떠도는 욕정, 침침한 가스등 불빛, 심지어 잠잠히 부풀어 있는 밤의 분위기, 이러한 모든 것이 일시에 나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밤의 공기는 속삭이는 말소리, 포옹, 떨리면서 하는 고백 소리, 끝을 맺지 못하는 말소리, 가냘픈 소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130p-
하지만, 차이점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부코스키의 작품 속의 문체나 사건의 서사에 함순의 작품보다 날림이 많다. 이 날림은 문장에 가독성과 해학성을 부여한다. 날림은 치나스키와 <굶주림>의 주인공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관도 다름을 알려준다. 쉽게 말해서, 치나스키는 술, 여자, 도박을 얻을 수 있으면 행복할 따름이고, 굶주리는 이는 굶주림을 해결할 음식과 글을 쓸 공간만 마련되면 행복했다.
<굶주림>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철저히 가려진다. 이는 주인공의 자의식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찌되었건 간에 4부로 구성된 함순의 <굶주림>에서 주인공에게 닥쳐오는 생존의 과제를 위해서 수반하는 필연적인 굶주림의 시련을 보여주는 방식은 각 부마다 동일한 과정을 거치고 위기를 넘기면서 시련이 봉합된다.
<굶주림>에서의 동일한 과정이란 이런 식이다. 먼저, 어느새 돈이 다 떨어진 주인공은 배가 고파진다. 배고픔의 심화과정이 자신의 내적 대화로서 이루어지고, 자기 자신의 물음에서 끊임없는 사유가 이어진다. 배고픔의 강도가 점차 세지면서 소설 속에서 강렬한 인상을 전달하는 클라이막스(그중에서 3부의 시련. 정육점에서 뼈다귀를 얻어다가 뼈다귀에 붙은 살점을 뜯고, 토하고, 뜯고, 토하는 과정은 이 소설의 백미였다.)로 치닫는다.
아무런 맛도 없었다. 뼈다귀에서는 썩은 피의 숨이 막힐 듯한 냄새가 나서 곧 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또 뜯어먹어 보았다. 게우지만 않으면 무슨 효험이 있겠지. 일단은 배를 달래두는 것이 문제였다. 또 다시 게우고 말았다. 나는 화가 나서, 사납게 고기를 물어뜯어서 억지로 삼켜버렸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미친 듯이 주먹을 쥐었다. 한 수 없는 심정에 거의 눈물이 나올 지경이 되어, 무엇에 혼을 빼앗긴 사람같이 뼈다귀를 물어뜯었다. 나는 뼈다귀가 눈물에 젖어 더러워질 만큼 울고는 토하다가 저주하다가는 다시 뜯었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울었으니 또 게우고 말았다. 나는 큰 소리로 세상의 모든 권위를 저주했다. -166p-
각 부에 할당된 클라이막스 과정의 주인공의 내적 고뇌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그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열심히 신문사에 기고할 작품을 써내려가지만, 노력의 대가는 온전히 보답 받지 못한다. 그는 행운의 경로를 통해 삶을 연장할 돈을 얻지만, 한계를 인정하고, 일탈을 끝으로 그곳의 생활을 정리한다.
가난한 인텔리는 돈 많은 인텔리보다도 훨씬 더 세밀한 관찰자란 말이지요. 가난한 사람은 한 발 한발 떼는데도 주위를 살피고, 남들이 하는 말에 회의를 품고 들거든요. 한 발 한 발이 나의 머리와 마음속의 문제와 과제를 준단 말이오. 그는 귀가 밝고 감각이 예민하고, 경험이 풍부한 인간이고 그의 영혼은 낙인이 찍여 있지요. -186p-
<대지의 축복>이라는 작품으로 노벨상까지 수상한 작가임에도 함순의 작품의 한글번역본이 <굶주림>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의 노년시절에 히틀러의 나치정권에 손을 잡고, 고국 노르웨이에게 도이칠란드와 함께 하기를 독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작품해설에서 전해주는 함순의 문학사적인 위치를 고려했을 때, 그의 <대지의 축복>을 접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