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찰스 부코스키의 <팩토텀>과 <여자들>을 모두 읽어 본 사람으로서, 장편 데뷔작 <우체국>이 가지고 있는 힘이 나머지 두 소설보다 훨씬 더 크다고 감히 말해본다. 부코스키의 <우체국>의 파급력을 구체화하고 싶어 내가 읽었던 여러 책을 하나 둘 떠올리다가 “이거다!”라고 손뼉을 쳤던 책은 아서 밀러의 희곡<세일즈맨의 죽음>이었다.


나이가 든 한 세일즈맨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회사로부터 버려지게 되면서 느꼈을 부조리와 <우체국>에서 체득하면서 치나스키가 느꼈을 부조리는 기업과 사회에 대한 경고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 사람들 모두 한 번 정도는 그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G.G는 착한 사람이야.> 하지만 이 착한 아저씨가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54p-


단순하게 말해서 이 소설은 <우체국>(미국의 우체국은 오래전부터 민영화되었다고 한다.)의 테일러주의(시간 관리와 노동 효율에 대해 과학적인 연구를 기준으로 60센티미터 서류함을 어떤 변수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23분 안에 마쳐야 한다는 주의. 물론, 물량이 적어서 8분 안에 끝마쳤다면 나머지 15분 동안 쉴 수는 없다.)


그리고 포드주의(일관된 반복 작업으로 효율성을 극대화 시키는 작업방식)라는 잣대를 가지고 인간을 기계의 부속품으로 작업장에 박아두고 비정규직, 초과근무 등의 착취로 이윤을 추구하는 1960년대 미국 민간기업의 환경에 대하여 고발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가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꽂는 편지 한 통, - 일 초가, 일 분이, 한 시간이, 하루가, 일주일이 - 근무 시간을 초과해서 꽂는 편지 한 통이 러시아 놈들을 무찌를 수 있어요! -95p-


집중! 409조의 임시 직원들에게 알립니다. 예정되어 있던 나흘 휴가는 취소되었습니다. 그 나흘 동안 일정에 따라 출근하시기 바랍니다! -99p-


우체국 업무는 하룻밤 열두 시간 근무에다가, 현장 주임을 더하고, 우편 사무원들을 더하고, 살덩이들 틈에서 제대로 숨도 쉴 수 없는 분위기를 더하고도, 거기에 <비영리>식당에서 만든 쉰 음식까지 참아야 하는 일이었다. 거기에 도시 주요부 구역의 암기 업무까지 더해졌다. -127p-


그런데 이 소설이 그의 다른 책들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기존에 <팩토텀>과 <여자들>에서 봐왔던 ‘술·여자·도박’ 이 세 단어로 설명할 수 있었던 ‘망나니’ 헨리 치나스키와 동일인물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참을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묵묵히 부조리와 싸워나가면서 주어진 일을 하기 때문이다.


거칠 것이 없던 청년시절의 <팩토텀>의 치나스키보다 좀 더 인생을 더 겪은 <우체국>의 치나스키는 어쨌든 간에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의 삶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소모당하는 있는 그의 영혼으로부터 여전히 쏟아지는 거친 입담과 충동적인 행동. 하지만 미처 발견할 수 없었던 그 언행에 숨어있던 치나스키의 따스한 인간애를 <우체국>의 여러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었다.


우체국에서 보낸 3년간의 비정규직 집배원 생활과 12년간의 우체국 직원의 생활. 도합 15년의 근로기간을 견뎌낸 치나스키에 경의를 표한다. 이제야 나는 <여자들>에서의 광기 어린 성생활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그것은 오랜 세월의 착취에 대한 부작용이 아닐까? 그렇다면 <여자들>에서의 치나스키의 행위들은 사회에 켜진 적색 신호등을 바라보며 소리치고 있는 고발의 연장이다.


저기서 철썩이며 올라갔다 내려가는 것 좀 봐. 그 밑에는 물고기들, 불쌍한 물고기들이 서로 싸우고 잡아먹지. 우리는 그 물고기들과 같아. 단지 뭍에 있다는 것만이 다를 뿐. 발을 잘못 디디면 끝장이야. 챔피언이 되는 게 좋지.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알아 두는 게 좋다고. -176p-


깊은 바다에서 너무 빨리 나온 사람처럼 고통스러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특수한 유형의 잠수병이었다. 나는 조이스가 길렀던 빌어먹을 잉꼬들과 다를 게 없었다. 새장 안에 갇혀 살다가 문이 열리자 날아올랐던 것이다. 마치 천국으로 쏘아 올린 총알처럼. 그런데 빠져나간들 천국일까? -236p-


부코스키 3부작 읽는 순서 : 팩토텀, 우체국,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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