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셀로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평점 :
내가 왜 악당이란 말인가, 카시오에게 자기 이익과 직결되는 내 길을 권하는데? 이건 지옥의 신학이야! 악마들이 가장 검은 죄악을 부추길 땐 그들도 처음에는 지금 내가 하듯이 천국의 모습으로 유혹하는 법이야. -2막 3장. 350~355-
이야고 씨. 당신이 악당이 아니면 <오셀로>에서 대체 누가 악당이란 말입니까? 당신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처음부터 갑자기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는 당신의 숨겨진 드라큘라보다도 뾰족한 뻐드렁니에 정말 놀랐습니다.
또한, 당신이 카시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마치 천사가 된 것 마냥 온화한 낯빛으로 방법을 조곤조곤 설명해주기 전에 이미 당신은 카시오를 미친개로 만들어놓고 일부러 시비를 걸어 사람을 물게 해놓고, 지금 와서 아주 큰 선심을 쓰는 척 고귀한 데스데모나에게 접근해서 사면을 요청하라는 당신의 뻔뻔스러움이 지옥의 신학이라고 한다면 별로 할 말은 없습니다. 지옥의 신학이라는게 나중에는 불쌍한 카시오를 죽이려고 들더군요.
이야고 씨. 당신은 마치 지금 <오셀로>라는 RPG 게임에 접속해서 게임 속 캐릭터를 이사람 저사람 쪼물딱거리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그 미친 존재감 때문에 정작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할 우리의 주인공 무어인(人) 오셀로는 찬밥 신세가 되었지요. 그가 맡은 배역. 나이가 많은 흑인으로서 젊은 백인인 데스데모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겪어야 할 여러 감정을 표현해야 할 의욕이 사라져버린 겁니다.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의 기쁨과 수천 아니 수만 킬로미터 아래의 낭떠러지에 있는 질투와 배신감의 고통에 대한 독자와의 상호적인 공감의 추구야말로 이 비극 속에서 그가 존재해야 할 가장 큰 이유인데, 잊을만하면 등장해서 데스데모나에 대한 의심과 질투심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못된 계략을 꾸미고 또 그게 자로 잰 것처럼 딱딱 들어맞는 바람에 오셀로의 역할이 추수가 끝난 논에 발가벗고 서 있는 허수아비 꼴이 되었다오.
오셀로 씨. 당신은 분명 처음에 <오셀로>의 세계 속의 모든 사람(데스데모나 가족들은 제외해야겠습니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는 오셀로와 딸을 결혼시킬 바에 차라리 눈에 흙을 집어넣으셨죠.)에게 널리 신망을 받는 아주 멋진 분이셨잖습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자신감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까?
제가 혼자 나름대로 생각해 봤는데, 당신은 아마도 젊고 아름다운 데스데모나가 대체 왜 늙어빠진 당신을 사랑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를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미 당신은 그녀에게 그녀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세상의 여러 경험을 전해주지 않았습니까? 저는 당신과 같은 고추 달린 남자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21세기에 흘러드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여성은 존중할 수 있는 남성, 자신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남성을 원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충분히 용기를 가져도 괜찮은 것 아닙니까? 피부색과 나이 그딴게 뭐가 중요하단 말입니까? 후우……. 그런데 이 말을 전하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