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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0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평점 :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은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있는 책인데, 이번에 읽게 된 민음사 이항재 번역의 <첫사랑>에는 첫사랑 외에도 다른 두 작품(귀족의 보금자리 , 무무)이 함께 수록되어 있었다. 세 작품을 놓고 봤을 때, 전부 ‘사랑’이라는 주제를 함축(정확히 말하자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세 작품의 간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이 시작함에 따라 수반하는 이질감은 거의 없다.
<첫사랑> (pervaya lyubor)
그녀를 알기 이전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에 없을뿐더러 이 세상에 살아 있었던 것 같지도 않았다. -26p-
나는 ‘줄리어스 시저는 군인으로서 용맹이 뛰어난 사람이었다.’라는 구절을 계속해서 열 번을 읽었지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내던지고 말았다. -33p-
바람 부는 맑게 갠 날의 구름처럼 온갖 감정이 가볍고 재빠르게 그녀의 눈과 입술을 끊임없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52p-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그녀의 것이 되어버렸다. -103p-
그녀 앞에 서면 나는 뜨거운 불에 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를 불태우며 녹여버리는 그 불이 도대체 어떤 불인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나로서는 불타며 녹아버리는 것 자체가 말할 수 없이 달콤한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104p-
회상으로부터 시작하는 <첫사랑>의 감정을 묘사하는 장면들은 선명하면서도 강렬하다. 그런데 남자를 다루는 재주가 주왕의 애첩 달기처럼 능수능란한 지나이다가 <첫사랑>의 감격에 미칠듯한 문장을 내뱉고 있는 어린 블라지미르를 시동(侍童)으로 삼는 장난같으면서도 모순적인 쓰라림은 블라지미르의 속내가 미친 문장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더욱 쓰라리다.
<첫사랑>이 단순한 결말의 이야기였다면 아마도 그의 고백이 의미 없는 단어들의 나열로서 금세 튀어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이다를 향한 그의 전투력을 <오셀로>의 이야고에서 조그만 학생으로 떨어뜨린 사건과 그 사건이 일으키는 뇌우가 쏟아지는 것 같은 충격파는 과거의 고백을 위한 준비기간에 이주일의 시간이 필요했음이 충분해 보였다.
‘내 아들아,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해라. 그 행복, 그 독을 두려워해라…….’ 아버지는 왜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남기고 돌아가셨는지 잘 모르겠다.
<귀족의 보금자리> (Home of the Gentry)
러시아의 어느 귀족가문의 가정사를 서술하는 동시에 주인공 라브레츠키와 리자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귀족의 보금자리>를 읽으면서 리자의 성장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이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의 과정과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좁은 문>과의 공통점이 기독교적인 가정교육 때문에 빚어진 자아의 상실이랄까. ‘주위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 때문에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인격을 가지게 된 리자가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수도원으로 도피하는 결말 또한 <좁은 문>과 같다.
라브레츠키의 어린 시절도 리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그의 아버지가 루소의 <에밀>을 바탕으로 구성한 스파르타식 학습 덕분에 전수하려고 했던 서구사회의 본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현상 위주의 수박 겉핥기 교육방식 때문에 여자를 보는 판단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외모가 아름다운 바르바라 파블로브나에 첫눈에 반해 결혼하게 된다. 그녀가 상류사회를 지향하는 댄디족이라는 사실은 그의 삶이 고달프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다시 말해서, 여자의 가문 쪽에서는 라브레츠키가 단순히 부자였기 때문에 결혼을 한 것이었다.
나중에서야 바르바라 파블로브나와의 결혼이 잘못임을 깨달은 라브레츠키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귀족들의 보금자리>는 당시 러시아 사회의 도덕적 모순(마리야, 판쉰)과 주인공이 대립하는 장면을 당사자들 간의 이데올로기를 함축하는 '볼테르주의자' , '자주성' , '보수주의자' , '위로부터의 개혁' 같은 단어들을 충분히 사용하여 인물 간의 직접적인 논쟁 형식의 대화내용을 담아 생생하게 전달한다.
솔직담백해지세요. 사랑 없이 자기를 맡기려고 하지 않는 당신 마음의 외침을 나약한 마음이라고 부르지 말아요. 당신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 사람에게 예속되려고 하는데 그런 무서운 책임을 져서는 안됩니다. 당신 마음에 복종해요. 오직 마음만이 당신에게 진실을 말할 겁니다. 경험, 이성, 이것들은 모두 보잘것없고 허무한 겁니다! 지상 최고의 유일한 행복을 자신에게서 빼앗지 말아요. -279p-
라브레츠키는 경험으로 얻은 성찰로서 잘못된 선택을 앞둔 리자를 구해내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끝내 바르바라 파블로브나와의 결혼을 파기할 수 없게 되므로, 어릴 적부터 쌓인 배경지식의 제거라는 큰 장벽 때문에 그도 역시 현실을 극복하는 것은 녹록치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에필로그에서는 어린 친척들의 명랑한 모습이 그들에게 밝은 미래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무무> (Mumu)
세 작품 중에서 느낌상 가장 거리가 먼 작품을 고르라면 <무무>를 선택해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무>에 담긴 귀머거리 농노 게라심과 귀여운 강아지 무무의 이야기가 가장 독자의 가슴을 충분히 울릴만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 배 위에서의 게라심과 무무가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장면과 터벅터벅 고향으로 내딛는 게라심의 힘없는 발걸음과 시골고향에서 익숙한 농사일과 함께 여생을 보내는 게라심의 처연함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감정의 일면이다.
귀머거리 노예와 강아지보다도 못한 여주인과 나머지 정상인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은 <무무>에서의 풍자적 내용전개가 노예제도의 불합리성과 더불어 귀족사회에 대한 비판에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챌 수 있는데, <무무>의 작품해설을 보니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 <사냥꾼의 수기>와 더불어 알렉산드르 2세가 러시아의 농노 제도를 폐지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