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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민주주의 - 자동차는 어떻게 미국과 세계를 움직이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3월
평점 :
1. 중국 소설가 한한의 <1988>은 스테이션 왜건의 출시년도를 나타내는 숫자였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1988이라는 숫자를 천안문 사건에 관련지어 생각했었는데, 강준만의 <자동차와 민주주의>를 읽어보니, 이 스테이션 왜건에 숨겨진 다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자동차와 민주주의>에서는 비트 제너레이션의 이야기가 나온다. 1950년대에 풍요로운 미국의 물질 중심적 가치관, 체제 순응적 가치관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라고 하는데, 이 비트세대의 정신이 2010년에 출간된 한한의 <1988>에 스테이션 왜건이라는 단종되어 사라져버린 차의 이미지로서 동일시된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던 1950년대의 풍요로운 미국과 다른 점이라면 소설 속 남녀 주인공의 생활이 전혀 풍요롭지 않다는 사실이겠지만, 2010년에 국도를 따라 달리는 1988년식의 자동차는 억압된 공산주의 안에서 타인과 소통하려는 저항적인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 상징은 현대문학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한의 작품뿐만 아니라 최근에 읽은 찰스 부코스키의 <여자들>에서도 차 한 대가 등장한다. 헨리 치나스키가 전국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여자들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1967년식 폭스바겐이다. <자동차와 민주주의>를 읽고나서야 비로소 <여자들>속 비트세대의 상징물인 폭스바겐을깨닫게 된다.

폭스바겐은 세월이 흘러도 겉모습을 바꾸지 않는데, 이것은 디자인만 바꾼 후 신제품이 출시되었다며 소비자들의 지갑을 노리는 미국 자동차 기업의 고의적진부화의 대항마로서 수립된 폭스바겐의 고유한 저항문화이자 판매전략이다. 따라서 <여자들>에서의 1967년식 폭스바겐은 미국과 미국의 물질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상징물로서 해석할 수 있다.
2. <자동차와 민주주의>는 자동차가 생겨난 이래로 한 몸처럼 붙어 나란히 달려온 100년간의 미국의 역사와 문화화의 특징을 시간의 흐름을 따르면서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그 속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유의 정신'. 자동차 때문에 어디든지 쉽게 떠날 수 있게 된 기동성의 확보라는 긍정적인 측면은 미국의 문화 발전과정의 전체를 봤을 때 아주 작은 부분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자동차로 인한 환경오염과 자원고갈의 문제, 자동차 내의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공격적인 운전, 모든 생활을 자동차와 함께 하므로 생기는 공동체 정신의 약화와 같은 이익 집단끼리의 전략적 동조화, 자동차가 사회적 지위를 뜻한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 대다수 미국인의 물질만능주의 같은 부정적인 측면이 편리함과 기동력을 얻은 댓가로 지급되기 때문이다.
"프라이버토피아는 재산권과 재산 가치만이 주요 관심사인 사람들이 오직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라는 '프라이버티즘'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군림하는 사회이다. 그런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아니 민주주의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자동차를 종교로 삼은 미국인, 아니 모든 사람에게 던져진 질문이자 숙제라 하겠다. -289p-
3. <자동차와 민주주의>라는 제목을 처음 보고 코웃음을 쳤던 기억이 난다. 자동차 하면 자본주의지 어째서 민주주의라는 단어와 엮을 수 있냐고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자동차가 가지는 영향력이 고스란히 민주주의 정치 속의 정책결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동차와 민주주의>에는 자동차 문제를 잘못 건드리는 지도자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대 선택받을 수 없다는 암울한 결과가 숨어있었다. 대한민국의 현실도 비슷하지 않은가? FTA에서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품목이 '자동차'이고 그래서 우리의 지도자들은 순순히 한미FTA를 발효시켰다. 좋든 싫든 간에 그들이 현재까지 민주주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상승하는 기름값 문제와 그에 따른 대책을 잘 마련하는 것도 민주주의 사회의 지도자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자동차와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엮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네이버 북카페 서평이벤트를 통해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하였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