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아 작가의 <미실>은 <논개>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작품인데, <논개>를 읽을 때 느꼈던 생각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어졌다. 생각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자면, 그것은 그녀의 언어와 문장에 관한 생각이다.
우선, 김별아 작가의 단어 선택은 전통적이며,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의 폭이 넓고도 깊다. 자주 등장하는 낯선 사자성어뿐만 아니라, 한자어로 이루어진 낱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작가의 문장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작가는 더 나아가서 음독했을 때의 운율에도 상당히 많은 신경을 쓴다. 예를 들면, 기묘한 기시감, 조심성과 주밀함. 같은 단어의 나열법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운율에 맞춰서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뜻을 가진 단어의 나열법은 당시의 분위기를 선명하게 그려내는데 큰 몫을 한다.
김별아 작가의 문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성은 대비되는 단어를 연달아 사용한다는 점이다. 선과 악. 하늘과 땅. 미와 추. 같은 단어들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 드러나는 양쪽의 극단을 부각시키는 대비의 언어는 독보적인 미실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미실의 상징을 위해 사용되는 이 대비법이 <미실>속의 모든 문장에 힘을 부여하고, 선을 굵게 한다.
<소설 미실>
소설 속 미실은 팜므파탈의 모습이다. 하지만 미실의 팜므파탈은 특별하다. 그녀의 삶은 신분을 초월한다. 원래의 신분은 왕에게 바쳐지는 색공이지만, 그녀는 왕족들의 노리개처럼 살지 않고, 미실이 삶의 주체가 되어 남성들을 끌어들인다. 왕족들이 전전긍긍하게 한다.
미실은 그녀가 가진 에너지를 현세에 모두 방출한다. 이런 삶의 방식은 내세를 기원하는 그리스도교나 불교의 가르침과는 완전히 다른데, 미실이 현세의 삶에 집착한 이유는 신라의 문화가 사후의 안녕보다는 현세의 행복을 우선으로 치는 문화고, 이 문화적 유전자가 그녀의 피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이타적인 여타의 문학작품과는 다르게 매우 이기적인 문학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실>의 교훈은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자는 것이고, 미실의 삶이 현세의 자아를 가장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비도덕적인 전성기 시절의 행동을 용서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이 책을 좋게 해석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할 것이다.
<미실>은 현세의 행복을 누리자는 교훈과 더 나아가 에너지가 소진되는 시점과 물러날 때를 정확히 알고,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교훈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어떤 삶을 살았던지 간에 떠날 때를 아는 사람은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맥락의 표현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마치 정치인들이 비리를 저질렀어도, 말년에 잘 수습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식의 느낌이 들어 좀 불편했다. 하지만 문학적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좋았던 책이었다. 미실의 음기가 헨리 치나스키의 양기를 완벽히 제압하는 순간이랄까...
[네이버 북카페 서평이벤트를 통해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하였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