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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텀
찰스 부코우스키 지음, 석기용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부코스키의 3부작을 거꾸로 읽는 중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팩토텀>의 마지막 문장이 이렇게 끝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그걸 세울 수 없었다.” 완전히 희망을 잃어버렸다고 고백하는
헨리 치나스키의 모습이 안쓰럽다. 치나스키와 동거했던 잔까지 돈 때문에 그를 버리고 다른 남자의 품으로 떠나버렸다.
<여자들>이 현실에서 인생을 얼마간 깨달은 치나스키의
개똥철학이며. 그것이 포르노그라피 사이사이의 문장으로 직접 전해지고 있다면, <팩토텀>은 그의 과거를 가급적이면 생생하게 표현하면서 특유의 해학적인 모습을 잃지 않는 삶이며. 그것을 독자들이 스스로 깨닫기를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팩토텀>을 읽어보니 <여자들>에서 헨리 치나스키가 ‘사랑을 왜 두려워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자들>의 초반부에서 최근 몇 년동안 여자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팩토텀>에서는 짐작했던 모든 것이 현실이 된다. 그 현실은 <여자들>
포르노그라피의 방식처럼 반복된다. 지역과 회사와 주위 사람의 이름만 바뀐
채.
따라서 <팩토텀>에서 청년 치나스키의 삶은 한 마디로
‘방랑’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그는 집에서 나와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한다. 시립대에서 저널리즘을 2년 배우고 중퇴했다는
학력은 기자가 되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나은 학력임을 알기에 그는 서둘러 고졸과 잡역부의 이력서로 급히 고쳐서 들이민다.
그는 일단 고용사무국의 세 가지 질문에 무조건 네라고 답한다. 그
질문은 “일할 수 있습니까?”, “일할 의지가 있습니까?”, “취업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입사지원서를 냈던 세 군데 회사의 목록을 제출한다.
그는 직장을 제2의 가족처럼 생각하고 싶다는 거짓말로 사장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취업에 성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장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가 똥줄 빠지게 일하지 않는다고 더는 내 가족이 아니라고 내쫓아 버린다.
"저는 사장님께 저의 '시간'을 드렸습니다. 그건 제가 남에게 줄 수
있는, 제가 가진 전부입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다 그렇죠. 게다가 전 한 시간에 고작 일 달러 이십오 센트를 받기 위해서 그랬단
말이죠."
"자네가 이 일자리를 간절히 바라던 때를 기억해봐. 자넨 직장이
제2의 가정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 그렇게 내준 제 시간 덕분에 사장님은 언덕 위의 궁전 같은
집에서 거기에 딸린 모든 것들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겁니다. 만일 누군가가 이런 거래, 이런 합의에서 무엇이든 잃는다면……. 그 손실을 입는
사람은 바로 저란 말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알았네, 치나스키.”
“알았다구요?”
“그래. 그냥 나가게.” -167p-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그의 취업 생활은 잠시
이루어졌다가 즉시 끝난다. 어떤 회사들은 추수감사절 행사까지 일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 이후에 틀림없이 모가지를 당하게 될 거라고 미리 알려준다.
이처럼 헨리 치나스키의 젊은 시절은 버림받는 것에 너무나 익숙한
장면들이다. ‘열심히 일해도 어차피 해고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에 술과 경마와 여자에 휘둘리는 일상에 빠져든다.
일자리에서 잘리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잘라도 좋으니 수표만 무사히 받아내면 그만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잠시나마 고용자 대리인의 위치에 섰을 때의
행동이다. 그도 그 자리에 올라서니 사람 다루는 방식이 그를 고용했던 다른 사장들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었다. 뭐랄까, ‘나는 이렇게 개처럼
살았는데 너희들이 날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어림없어!’ 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쨌든 일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과는
달리 헨리 치나스키가 대인배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