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대교북스캔 클래식 24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활란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정신적으로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야.”

 

‘나’(소설 속 선생님)는 초조함을 감추고 하나뿐인 친구 K에게 반복적으로 이 말을 읊어 댔다. 겉으로는 너의 길을 가라고 격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문장이 ‘나’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모든 것의 망가짐을 뜻한다. 이 말은 유산을 가로챈 숙부와 나는 다른 인간일 것으로 생각했던 믿음에 균열을 만들어내는 문장이며, 인간의 이기적인 양면성을 드러내는 천박한 문장이다.

 

아버지에게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았던 숙부가. 부모님께서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나를 아껴주던 숙부가. 왜 갑자기 유산을 가로채 갔을까? 내(선생님)가 나(나)의 나이였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상종 못 할 인간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하숙집 아가씨를 K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했던 말과 이 말로 인해 K가 보여준 행동에서 과거 숙부와 나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나름 평생 쌓아왔던 인생관에 숨어있는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방법 또한 같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 하지만 배고픔 앞에 굴러들어온 인생을 바꿀만한 큰 먹을거리를 고스란히 남에게 바치는 인간 또한 없다.

 

절제된 시점, 절제된 대화, 절제된 행동의 끝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이 악마는 불행하게도 선생님의 인생 전체를 지배한다. 어느 때는 참회의 의미로. 어느 때는 방어의 의미로. 때에 맞게 교묘하게 모습을 변형하여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래서 그는 ‘부자는 게으르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뒤집어쓴 채, 무위도식하며 인생을 살아간다.

 

“과거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발은 얹으려고 하지. 나는 훗날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거절하고 싶네. 지금보다 더 외로운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 지금의 외로움을 견디고 싶어. 자유와 독립, 그리고 자아로 충만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는 거야” -47p-

 

<마음>에서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리를 멘토 ‘나’(선생님)와 멘티 ‘나’(소설 속의 나)의 만남이라는 어떻게 보면 단순한 줄거리로서 전달한다. 만남의 과정이 급하지 않으므로 두 사람 사이의 탐색과정은 흥미롭게 전개된다.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이타적인 배려심은 찾아볼 수 없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편지로 급하게 전해지는 그의 과거사 공개방법 또한 나쓰메 소세키가 <마음>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결론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이 세상에 나와 연관된 유일하게 자에게 종족보존의 본능과 같은 이기적인 이유로서 번식을 허락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냥 묻어 버리기에 아깝기도 하지만 후대의 사람들이 이런 감정을 맞닥뜨렸을 때, 나(선생님)의 인생을 기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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