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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위저드 베이커리의 제빵사는 믿을 수 없겠지만, 진짜 마법사였다.
TV에 모습을 드러내는 가짜 마법사가 아닌 세상을 조정하는 마법사였다. 인간이 아닌 존재였다. 그는 누군가에 의해서 비틀어진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마법의 빵을 팔고 있다고 했다.
주인공 ‘나’에게는 <위저드 베이커리>가 현실 도피와 숨
고르기가 가능한 공간이었다. ‘나’와 배선생의 관계가 냉각되어도 아침과 저녁을 거르지 않게 해주던 곳이었고, 무희가 가리킨 손가락 때문에 집에서
도망쳐 나온 ‘나’가 머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어딘가에서 평소와 다른 어떤 힘이 발생하면, 그것과 일상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또 다른 유형의 힘이나 반대 극에 있는 힘이 한편에서 작용하여 지나치게 확산된 에너지의 흐름을 잡아당긴다. 그럼으로써 생성과 소멸의
논리를 이루어나간다. -105p-
빵 만드는 마법사는 세상의 여러 갈등에서 빚어지는(엔트로피 증가에
따른 순방향의 붕괴) 인간관계의 문제를 역방향의 빵들로 조정하는 중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실수를 유발하는 악마의 시나몬 쿠키,
짝사랑하는 남자를 스토커로 만들어버린 체인 월넛 프레첼, 시간을 되돌리는 머랭 쿠키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소개되는 모든 빵은 강제력을 지닌
힘으로 현실을 바꾸는 도구였다.
하지만 ‘나’가 제과점에 머무르는 동안 들이닥치는 성난 고객들의
불만과 결말은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판매하는 마법의 빵이 엔트로피의 증가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것 같았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듯 마법사 대신해서 싸운 꿈속 몽마의 공격은 앞으로 겪어야 할 전투를 미리 연습하게 한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현실도피를
극복하고 있었다.
현실이란 그넷줄이나 위로 튀어 오르는 공과 같이 얼마나 건조하고
절망적인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곳까지 밖에 오르지 못하며, 땅이 잡아당기는 힘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내려오니까.
-123p-
사람의 감정은 어째서, 뜨거운 물에 닿은 소금처럼 녹아 사라질 수
없는 걸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치 통조림만도 못한 주제에. 그러다 문득 소금이란 다만 녹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어떤
강제와 분리가 없다면 언제고 언제까지고 그 안에서. -163p-
갑작스러운 경찰(현실)의 방문 덕분에 완전히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깨달은 ‘나’는 조심스럽게 집안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곳에서 ‘나’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을 겪는다. 이 상황을 바라보게 되면서
‘나’는 극단적인 위기에 봉착한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잘 짜인 플롯 구성과 두 가지의
결말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마법사가 건네준 머랭 쿠키를 사용한 Y의 결말과 타의에 의해 저절로 현실이 흘러가는 N의
결말이 그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N의 결말이 저자가 유도하는 진정한 결말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왜냐하면, Y의 결말에서는 일단 근본적인 해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성욕은 해결하는 대상만 바뀌었을 뿐 똑같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 원인이 홀로 남겨진 ‘나’에게 있다는 오해가 반복된다. 결국
‘나’는 과거와 같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소녀가 흔드는 손을 보며 기시감만 느낀다.
그와 대조적으로, N의 결말은 ‘나’의 모든 경험이 보존된다. 현실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으나, 긴 시간이 그것을 이겨내고 있음을 말더듬 현상의 극복으로 보여준다. ‘나’는 어느새 바른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한, 달콤한 카스텔라의 맛과 위저드 베이커리를 잊지 않고 있었다.
아무런 목적도 의지도 없는 채로 우연히 거기 있었던 것들이 서로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 그때부터 이유를 만들어간다고 해. 그렇게 만들어진 이유들의 흩어짐이 대원리 또는 숙명을 이뤄. 이건 그의 생각이야 너는
나름대로 네 사정에 맞게 생각해. -107p-
약간은 <파우스트> 적인 느낌이 나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모든 소망을 이루어주는 마법사가 왠지 메피스토펠레스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유일하게 그 규칙이 적용되지 않은 사람이 바로 ‘나’였다. 인터넷에서
마법의 빵을 주문함으로써 메피스토와 계약하는 사람과는 다르게 이곳을 성장하는 밑거름으로 삼는 ‘나’의 존재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