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빌가의 테스 대교북스캔 클래식 16
토마스 하디 지음, 김명신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순진하고 아름다운 테스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은 분명하다. 소설을 차근차근 읽다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문제는 잊혀진 오랜 가문의 후손이라는 지위가 부여하는 쓸모없는 자존심과 그 자존심에 걸맞지 않은 가난함이었다.

 

전혀 손 쓸 수도 없는 뿌리 박혀있는 지역사회의 인습들도 문제를 야기했다. 어린 나이의 테스는 처녀성과 원치 않았던 아이를 잃고, 마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들 탓에 고향에 더는 머무를 수 없게 된다.

 

그녀는 다른 어느 누구에게가 아닌 그녀 자신에게만 하나의 존재이며, 경험, 정열 감각들로 이루어진 구조물이었다. 그녀 이외의 모든 사람에게 그녀는 그저 잠시 생각나는 존재일 뿐이다. 그녀가 비참해하는 것은 대부분 그녀의 인습적인 생각에 따라 생겨난 것이지 본질적인 감각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141p-

 

사람은 지혜로워질수록 다른 사람들의 차이를 더 잘 인식하게 된다. 평범한 자는 사람들 사이의 아무런 차이도 찾아내지 못한다. -181p-

 

테스가 겪은 고통에서 토머스 하디의 문장들은 테스가 경험을 쌓고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성숙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경험을 통한 깨달음이 가장 우선시 된다는 견해를 드러낸다. 그것은 토머스 하디의 견해였고, 에인절 클레어의 견해였다.

 

그녀의 영리한 아름다움은 에인절 클레어에 의해 꽃을 피우나 싶었는데, 그의 내면에 남아 있던 보수적인 벽에 막혀 안타깝게도 시들어버린다. 종교적으로 가장 진보한 인간이었던 에인절 클레어의 능력으로도 테스의 지난 과거를 덮어주지 못하는 종교의 경직성은 또 하나의 문제가 되어 그녀의 인생을 황량한 무밭으로 인도한다. 에인절에게는 브라질로 가라고 명한다.

 

구성적인 부분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신혼 첫날밤. 두 사람의 고백이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는 사실이었다. 회복의 기미를 보이던 상처들이 그 사건 이후로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다. 그녀의 곁에 이즈와 메리언이란 친구가 없었다면 테스의 이야기는 예고 없이 마감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내적 깨달음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토머스 하디는 테스의 삶을 <전태일 평전>에서 서술되는 방직공장의 소녀들이 상상이 되게끔 그리고 있었다. 공장의 소녀들처럼 그녀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약할 수 없는 오랜 기다림, 노동의 고단함, 껄끄러운 인간관계의 고통뿐이었다. 그리고 알렉 더버빌이 야기하는 모든 충격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토머스 하디는 한 어린 여자의 삶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그리면서도 비윤리적인 범죄를 저지른 알렉 더버빌에게는 참회한 삶을 허락한다. 하지만 인간 본성의 불변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토머스 하디는 테스와 만나는 동시에 알렉을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한다.

 

테스가 처한 모든 상황을 알고 나서도 알렉은 그녀를 다시 품을 생각을 한다. 그녀 앞에서 에인절의 철학이 되려 그녀를 탐할 이유가 되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테스의 마음속에는 과거처럼 증오라는 감정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잃은 테스의 가족들은 마을에서 쫓겨난다. 알렉은 그녀에게 또다시 돈의 유혹을 건네고 테스는 그 유혹에 영혼까지 함께 굴복한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었다. 에인절의 귀환이 약속되어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녀는 남겨진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희생한다.

 

브라질에서의 고생과 경험들로 뒤늦게 테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에인절이 서둘러 영국으로 도착했을 때는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다. 에인절과 마주친 테스의 심장은 다시 두근두근 뜀박질을 시작했다. 그녀는 이 사실을 알게 된 알렉을 살해한다.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오는 병아리의 모습처럼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토머스 하디는 이미 늦었다고 말한다. 테스를 기다리는 것은 살인죄의 판결뿐이었다. 마지막까지 사회는 테스에게 가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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