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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이해 - 문학예술총서
E.M.포스터 / 문예출판사 / 1990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모든 소설가가 원형의 도서실에 앉아 함께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상상함으로써 시간이 인간에게 품고 있는 원한을 피할 수 있다. -17p-
E. M. 포스터의 <소설의 이해>에서는 연대기 순으로
소설을 분류할 것이 아니라, 소설이 담고자 하는 주제들을 통해 분류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한 인간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시간이라는
요소를 잘라버리고도, 인간을 표현하는 소설가들을 같은 공간에 모아놓아도 분류가 가능하다는 말은 역사 속에서 인간이 고뇌했던 의식에 큰 변화가
없음을 단정짓는다. 이것이 그의 서론이었다.
만일 인간성이 변한다면 그 변화는 각 개인이 새로운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내다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이것을 해보려고 한다. 모든 기구와 기득권이 이러한 연구에 반대한다. 아무 이득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적인 금지가 약화될 때만이 이것은 진전할 수 있다. -187p-
하지만 기득권의 외적금지가 약화될 수만 있다면 인간성의 변화는 다양한
각도로 인간을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질 것이고, 소설을 주제별로 분류해도 충분히 설명 가능한 단순함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말에서 말한다.
그가 서론에서 인간 의식을 한정시켰던 이유는 저자의 판단으로는 짧은
역사로 인해 인간의 판단력이 넓은 시야를 가지는 것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서 였다. 하지만 역사가 이어지고 탐색의 방향이 늘어갈수록
그가 한정 지은 것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것임을 예상하면서 인정한다. 이것이 그의 결말이었다.
이 책은 서론과 결말을 제외하면 2. 스토리, 3. 인물1, 4.
인물2, 5. 플롯, 6. 환상, 7. 예언, 8. 패턴과 리듬으로 이어진다. 먼저 읽었던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이 중 8.
패턴과 리듬. 즉, 서술 방법에 대한 문장의 중요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한다면, 포스터의 <소설의 이해>는 소설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을 최대한으로 공평하게 나열해 놓았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서술방식은 각 단락의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말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예시를 제시하면서 진행되고 있는데, 강의를 책으로 다시 엮은 것이라서 그런지 대부분의 예시들이 한 작품의 사항들을 빠르게 읊조리는
느낌을 준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언급된 소설의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지라 읊조리는 단어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가 주장했던 점들을 중점적으로 정리해보면서 하나의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아 안도감을 느낀다. 아래에서 정리한 부분 중에 굵게 표시된 부분을 모아 정리한 것이 아마도 그 실마리가 아닐까 한다.
이야기는 호기심을,
인물은 인정과 가치 의식을, 플롯은 지력과 기억력을 각각 요구한다. 환상은 우리가 부가물을 지급하도록 요구한다. 소설의 예언적 형상은 겸허와 유머 감각의 유보를
요구한다. 패턴은 우리의 미각에 호소하고 우리가 책을 전체로 보게 만든다.
이야기는 문학적 조직 중에 가장 저급하고 단순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설이라고 하는 아주 복잡한 조직에 공통적인 최고의 요소이기도 하다. -32p-
우리가 과거를 돌이켜볼 때, 그것이 평평하게 펼쳐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띄는 몇 개의 산봉우리로 싸여 있고, 미래를 내다볼 때 그것은 종종 벽처럼 보이기도 하고, 구름처럼 보이기도 하고, 태양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연대표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33p-
소설가는 다른 예술가 동지들과는 달라서 자기 자신을 대충 묘사하는
수많은 단어를 만들어 여기에 이름과 성을 붙이고, 그럴 듯한 몸짓을 시키고, 인용 부호를 사용하여 말을 시키고, 전후가 맞는 행동을 하게 한다. 이 단어들이 작중 인물이다.
-50p-
소설이란 증거에 X를 더하거나 X를 빼낸 것에 근거를 둔다. 이
미지의 양은 소설가의 기질이다. -51p-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완전한 통찰도 없고 완전한
고백도 없다. 우리는 외적인 징표로 서로를 대강 알고 있을 뿐이며, 친교를 갖기 위한 기초로서 이 징표는 충분하다. 그러나 소설가가 원하면,
독자는 소설에 나오는 인물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외면적 생활뿐만 아니라 내면의 생활도 노출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53p-
독자를 놀라게 하지 못하면 그는 평면적인 인물이다. 믿지 못하게 하면
그는 입체적인 체하는 평면적 존재이다. 입체적 인물은 작품 속에 무궁한 인생을 갖고 있다. -87p-
플롯 역시 사건의 서술이지만 인과 관계를 강조하는 서술이다. “왕이
죽자 왕비도 죽었다.” 이것은 이야기이다. “왕이 죽자 슬픔에 못 이겨 왕비도 죽었다.” 이것은 플롯이다. 시간의 연속은 보존되고 있지만
인과감이 거기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96p-
소설의 어떤 형상을 정의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것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욕망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호기심을, 인물은 인정과 가치 의식을, 플롯은 지력과 기억력을 각각
요구한다. 환상은 우리가 부가물을 지급하도록 요구한다. 마치 박람회에 들어갈 때 입장료를 치렀는데도 특별한 여흥을 보기 위해
따로 6펜스를 치러야 하는 것과 같다. 어떤 독자들은 이 특별 여흥을 보기 위하여 박람회에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기꺼이 돈을 치르지만, 어떤
독자들은 화를 내며 거절한다. 거절한다는 것은 환상을 싫어한다는 것이지 문학을 싫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119 ~
120p-
소설의 예언적 형상은 두 가지 성질을
요구한다. 겸허와 유머 감각의 유보를 요구한다. 겸허란 내가 오직 제한된 감탄만을 보낼 수 있는 특질이다. 겸허가
도와주지 않으면 예언자의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우스운 꼴만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웃음을 거두고 자세히 보면 대머리는 비평을 가할 가치가
없고 진정한 웃음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인식 할 수 있다. -139p-
가치 있는 것이란 인물과 사물의 색깔과 몸짓과 윤곽 등으로 소설가가
보통 갖고 있는 어투들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그것들이 독특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에 속하는 것들이다. -159p-
스토리는 우리의 호기심에 호소하고, 플롯은 우리의 지력에 호소하지만,
패턴은 우리의 미각에 호소하고 우리가 책을 전체로 보게 만든다. -164p-
리듬이란 적당한 간격을 맞출 수 있을 때 그때그때의 충동에 의존하여
이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절묘한 효과는 작중 인물을 해치지 않고도 이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형을 갖추는 수고를 덜어준다.
-18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