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폴 오스터 지음, 김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어느 크리스마스 날. 브루클린의 조그마한 담배 가게 주인 오기 렌은 도둑질을 하다 도망가던 소년이 떨어트린 지갑을 되돌려주기 위해 지갑에 적힌 주소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 집에서 소년 대신에 만난사람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 소년의 할머니였다.

 

손자가 왔나 싶어서 부르는 소리에 오기 렌은 거짓으로 소년인 척 했고, 그 사실을 서로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불우한 이웃과 보내는 것이 의미 있는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에 홀로 남겨진 할머니의 손자노릇을 하며 함께 보낸다.

 

그 집에서 오기 렌은 소년이 도둑질한 것으로 보이는 카메라를 발견하고는 그 중 하나를 몰래 가지고 나온다. 그 카메라는 오기 렌이 매일 아침 7시만 되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앵글로 딱 한 장씩 사진을 찍는 바로 그 카메라였다. 그는 이 요상한 취미를 12년 동안 매일같이 해왔다. 그리고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을 앨범 속에 날짜별로 차곡차곡 담아두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고민하던 폴 오스터에게 다가온 오기 렌의 특별한 경험담은 그가 장담했던 것처럼 죽이게 괜찮은 크리스마스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신문에 실린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낀 영화감독 웨인 왕의 제안으로 영화 <스모크>의 시나리오 작업은 시작된다. 단편소설이었던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풍성한 내용을 가진 한편의 영화로 바뀌어간다.

 

나는 깨달았다. 오기는 시간을.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찍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세상의 어느 작은 한 모퉁이에 자신을 심고 자신이 선택한 자신만의 공간을 지킴으로써 그 모퉁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16p-

 

매일 같은 시간에 사진기를 들이대는 오기 렌의 모습에서 자신의 공간을 지켜나가려는 한 인간의 의지를 발견한 폴 오스터는 브루클린이라는 공간을 지켜나가려는 의지를 지닌 다른 세대, 인종, 종교, 경제적 여건을 가진 군상들의 모습을 영화 속에 새겨 넣는다. 담배 가게를 중심으로……. 그곳을 들락거리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통해서…….

 

<스모크>를 찍으며 생긴 또 다른 아이디어를 담은 작품인 <블루 인 더 페이스>는 모든 배우들에게 담배 가게의 손님 또는 이웃이라는 상황만을 제공. 배우들의 자유로운 대사와 이야기를 살려낸다. 그리고 브루클린에 실제로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영화 곳곳에 삽입하여 브루클린이라는 장소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더욱 깊숙이 파고드는 또 하나의 영화를 탄생 시켰다.

 

이 두 시나리오의 제작 과정과 시나리오들을 차례대로 읽으면서 도전을 즐기고 있는 소설가 폴 오스터의 밝은 얼굴을 상상해보았다. 왜냐하면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모든 부분에서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설 쓰기는 유기적인 작업이다. 대부분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길고 느려서 진이 빠지는 일이다. 시나리오는 그보다 조각그림을 맞추는 퍼즐 같다. 실제적인 단어들은 금방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조각들을 맞추는 게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대사를 쓰고, 서술적인 표현이 아닌 극적인 표현을 생각해 내는 것, 그건 도전해 볼 만했다.” -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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