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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주의자 캉디드
볼테르 지음, 최복현 옮김 / 아테네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사물은 현재의 상태와 다르게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그 모두는 필연적으로 최선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즉, ‘모든 것은 잘되어있다.’라는 주장은 어리석은 것이며 ‘모든 것은 최선으로 이루어져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16p~17p-
이 이론은 ‘순진한’ 이라는 뜻을 이름으로 가진 캉디드라는 어린 소년에게 스승 팡글로스가 가르쳐주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낙천주의자, 캉디드>의 주인공 캉디드는 이 이론을 진리로 여기고 있었다.
즐겁게 최선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살던 캉디드는 그가 사랑하는 퀴네공드에게 입을 맞추자마자 그녀의 아버지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그 길로 쫓겨나게 된다. 내쭃겨진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세상의 실제 모습은 캉디드 스스로 최선의 모습이라고 위로하긴 했지만,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최선의 모습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캉디드에게 다가온 것은 자유가 억압된 군대라는 세계였고, 그 다음으로 전쟁, 지진, 종교 화형식같은 사건들이 계속 이어진다. 한편, 죄를 피해 도달했던 엘도라도에서 싣고 온 다이아몬드로 부자가 되었을 때는 그의 주위에는 사기꾼들만 득실댄다. 볼테르는 세상의 사건들을 통해 캉디드에게 냉혹함을 알려준다.
캉디드에게만 세상이 잔혹했던 것은 아니었다. 책 속의 퀴네공드의 경험. 남작의 아들의 경험. 마르탱의 경험. 팡글로스의 경험. 특히, 한때 공주였던 노파가 만났던 경험도 캉디드의 눈으로 본 것 보다 훨씬 악독하고 잔인한 세계였다. 그랬기 때문에 저자 볼테르는 그녀의 하소연을 위한 공간을 할애해 준 것일지도 몰랐다.
캉디드는 그가 겪고 들은 모든 탐욕, 폭력, 미신, 기만 앞에서도 ‘모든 것은 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의심하지 않는다. 엘도라도에서 얻은 부를 사기 당했을 때 만나게 된 마르탱과 '충족이유율'이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만난 사람들 (파케트, 지로플레, 포코퀴란테)이 캉디드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말함에도 의심하지 않는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작의 아들과 팡글로스가 극적인 만남을 통해 다시 등장하고, 캉디드와 마르탱에 팡글로스까지 합세하여 이어지는 논쟁은 마지막 장소인 콘스탄티노플에서 싱겁게 끝을 맺는다.
캉디드 일행과 그곳에서 만난 이슬람 승려와 터키 노인의 대화는 캉디드와 마르탱로 하여금 “이 세상이 최선이냐 그렇지 않느냐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는 그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작은 것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결말을 얻어내게끔 한다.
이슬람 승려 : “악이 존재하건 선이 존재하건 무슨 상관인가? 대술탄께서 이집트로 배를 보낼 때 배 안에 쥐들이 편히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염려하시던가?” -246P-
터키 노인 : “공무에 관여하는 사람은 가끔 비참하게 죽는다. 나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전혀 알고 싶지를 않아. 나는 내가 가꾸는 밭에서 나는 과일을 그곳에 내다파는 걸로 족해. 노동은 우리를 커다란 세 가지 악, 즉 권태와 방탕, 그리고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걸세.” -247P, 248P-
마르탱 : “추론을 그만두고 일합시다. 일을 하는 것만이 삶을 견딜 만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249P-
캉디드 : “정말 멋진 명언이로군요!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농원을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250P-
결국, <낙천주의자, 캉디드>를 통해 볼테르가 라이프니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세상이 선한가? 악한가? 논쟁하는 것은 살아가는데 그리 중요하지 않거든? 입 아프게 떠들지 말고, 당신 발등에 떨어진 불이나 꺼! 그게 더 중요한 문제야.”정도가 아닐까?